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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5 안동찜닭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5. 안동찜닭

 

음식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마법'이다. 낯선 외국에 가더라도 낯익은 음식을 만나면 전생에 이 곳과 깊은 인연을 맺은 듯한 기시감을 주는 것이 음식의 매력이다.

 

'안동찜닭'도 그렇게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준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닭요리를 사랑하는 국민이 있을까 싶다. 자영업 선호도 1위가 치킨집이다. 자고나면 치킨집이 하나 더 생긴다. 요즘이야 코로나시대라 경기를 많이 타지만 비대면 배달음식 1위 역시 치킨이다.

 

'안동찜닭' 역시 치킨집의 일반적인 역사와 함께 한다.

 

뭘먹어도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1970년에서 80년대로 넘어오는 시대는 그랬다. 지금보다는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다. '1인1닭' 이라는 신조어는 사치였다. 주머니가 얇았던 그 때, 닭 한 마리로 온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안동찜닭은 닭 한 마리로 여러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온 해법이었다.

 

안동찜닭골목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안동원조통닭 임명자 사장은 "당시에는 대학생과 방위병 등 젊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찜닭 한 마리 시켜놓고 배불리 먹곤 했다"며 "그 때는 닭을 통째로 튀겨먹는 통닭과 찜닭이 '주메뉴'였는데 여럿이 오면 찜닭을 시켜야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같이 각 부위별로 절단해서 튀기는 조각 치킨보다는 닭을 통째로 튀겨내는 '(옛날)통닭'이 대세인 시대였다.

 

그냥 튀김옷을 입혀서 튀겨내면 여럿이 먹기에 부족하지만 여기에 감자와 각종 채소를 넣고 조리고 마지막에는 불린 당면을 넣으면 푸짐해진다. 보통 접시에 담기에는 양이 많아서 옛날에는 아예 '오봉'이라고 불리는 큰 쟁반에 수북이 담아서 내놓았다.

 

이 찜닭은 퇴근한 직장인들에게 저녁 겸 푸짐한 안주거리가 됐고 주머니가 얇은 학생들과 군인들에게도 최고의 먹거리였다.

 

요즘도 성지순례하듯이 안동 찜닭골목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대충 30여 곳에 이르는 찜닭골목에 자리잡은 식당에는 하나같이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력을 덕지덕지 붙여놓고 치킨을 사랑하는 '치느님'의 시선을 끈다.

 

안동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음식 중의 하나가 안동찜닭이다.

 

'찜닭'이라는 음식이 조리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갈비찜을 대구에서는 '찜갈비'라고 부르듯이 찜닭도 서울에서는 '닭찜'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동찜닭은 닭을 찌는 요리가 아니다. 닭을 찌거나 삶는 요리는 닭백숙이나 삼계탕이다.

 

'안동찜닭'은 닭볶음탕(닭도리탕)의 안동식 변형이다.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게 하는 대신 붉은 고추를 어슷어슷 썰어 청양고추 특유의 '칼칼한 맛'을 유지하되, 간장소스로 조리를 해서 시원하면서도 단 맛을 내게 한 것이 안동찜닭의 특징이다. 여기에 굵은 당면을 넣거나 사각당면을 넣어 여럿이 먹어도 푸짐하게 했다. 특히 간장 소스에 졸여 담백한 닭고기와 어울어진 당면의 맛이 일품이다.

 

'구시장' 찜닭골목에 자리잡은 식당들의 찜닭 맛은 기본은 비슷하지만 입맛에 맞추는 바람에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안동사람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이 바로 이 안동찜닭이었다. 예전에는 이 구시장 일대가 안동에서 가장 번화한 '시내'라 부르는 원도심이었다. 안동역이 지척 간에 있고 지금은 대형마트(홈플러스)가 들어선 자리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잡고 있어서 안동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곳이었다. 구시장 대로 건너편에는 중앙신시장이 있다. 그 사잇길에는 안동포(삼베)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야말로 안동을 대표하는 상권이었다.

 

 

 

요즘 나는 아주 가끔 시내를 가면 아주 오래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시내까지 걸어가서 안동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찜닭을 시켜 먹었던 옛 기억을 소환하곤 한다.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잘 정돈된 시내 보행길을 걸어, 전국 3대 빵집의 하나로 이름난 '맘모스제과'에 들러 갓 구워낸 빵 냄새를 맡는다.

 

안동찜닭이 지금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봉추찜닭'이라는 브랜드의 프랜차이즈가 서울에서 대박을 치면서 부터였다. 배달된 찜닭도 좋지만 찜닭골목에 가서 번호표를 받고 한꺼번에 네다섯 개의 화로 위에서 동시에 조리되는 찜닭이 조리되면서 풍기는 간장향을 맡는 것은 안동을 걷다가 얻을 수 있는 득템 중의 하나다.

 

내 기억속 '안동찜닭'은 토실토실한 닭을 직접 고르면 닭집 사장님이 즉석에서 목을 쳐서 닭을 잡아 조리하곤 했다. 집에서도 닭을 잡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다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 때는 식당에서조차 냉장고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신선한 닭으로 조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찜닭골목에 들어서면 나는 꼭 찜닭 한 마리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긴다. 코로나사태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보다는 못하지만 흥청망청하던 '안동찜닭축제'도 열지 못하게 했다.

 

안동오일장은 2, 7일마다 열린다. 구시장과 중앙신시장 등의 상설시장이 있지만 오일장이 열리면 장터는 묘한 흥분감과 긴장감이 흐른다. 시골장날다운 특유의 축제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장날엔 평소 만나지 못하던 이웃동네 친구도 만나고 찾아가서 뵙지 못하던 먼 친척아재와 할매도 운좋게(?) 장터에서 만날 수 있다. 꼭두새벽부터 부산하게 '꽃단장'을 하고 댓바람에 첫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손수 농사지은 고구마와 마, 참깨같은 금쪽같이 귀한 농작물을 내다팔려면 남들보다 일찍 장터에 나가 목좋은 곳을 골라잡아야 했다.

 

도산지나 녹전과 예안, 임동, 북후는 물론, 일직과 와룡, 심지어 의성 단촌에서도 안동에 장을 보러왔다. 오일장은 중앙신시장 노외주차장이 주무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상인들은 여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도로변과 주변 골목으로도 '난전'을 펼친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이른 아침에 가야 제대로 시장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르신들은 참 부지런하다. 이른 새벽부터 좌판을 깐 난전 할매들은 "진지 자셨니껴?"같은 구수한 안동사투리 수인사로 북적거리다가도 흥정을 할 때는 영락없이 '장사의 달인'이 되었다가도 푸짐하게 한 됫박 더 주는 인심을 베푼다.

 

안동에는 연중 제사가 끊이지 않는 종갓집들이 꽤 많다. 신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삶은 문어나 건어물을 파는 가게와 떡집이 많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어는 전라도의 홍어처럼 필수적인 제수다. '안동 간고등어'를 직접 가공해서 판매하는 간고등어 가게들도 포진하고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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