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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국립백두대간 수목원

총면적 5179㏊, 35개 정원 아시아 최대 규모
양탄자처럼 장식된 국화꽃, 은빛 물결 갈대, 탐방객 반겨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호랑이 관람객들 소리에 위용 뽐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자 내 마음속의 풍차는 추풍(秋風)을 잔뜩 품어 세차게 돌기 시작한다.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많아 붉게 물들고, 카로티노이드(carotinoid)가 다량 함유되어 노란색을 띤다는 원색적인 이론을 떠나 어디로든 가잔다. 등살에 못이기는 척 이곳저곳을 고르고 견주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으로 길을 잡는다.

 

 

 

◆억지춘양의 고장,봉화 춘양을 가다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은 2008년 광역경제권 30대 선도프로젝트 중 대구·경북을 비롯하여 내륙지방의 활성화를 위한 3대 문화권(신라·가야·유교)의 생태·관광기반 조성사업에 선정됨으로 생겨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자원의 안정적 확보 및 보존·연구를 위한 기후대별·권역별 국립수목원 확충 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된다.

 

총면적 5,179㏊, 총사업비 2,201억(토지매입비 포함)원을 투입한 프로젝트로 2009년 착공, 2015년 12월(공사기간 약 7년)에 완공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다. 탐방한 누적인원은 607.630명(2020.10.30.일 현재)이며 수목원 내에는 진입광장을 포함한 35개의 크고 작은 정원을 조성,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봉화 춘양은 겨울철이면 단골손님처럼 추위를 달고 사는 고장이다. 경상북도 안에 계란노른자처럼 박혀 추위라면 빠지지 않은 대구와 한겨울의 날씨는 비교하면 거의 10도 씩이나 차이가 날 때도 있다. 그 바람에 오히려 강원도가 울고 갈 지경이다. 이런 옹골찬 추위가 단점만은 아니라서 명품 소나무를 길러냈다. 이름 하여 춘양목이다.

 

춘양목은 겉껍질에 붉은빛이 돌아 적송이라고도 부르는 육송이다. 하지만 이 명품 소나무, 춘양목으로 인해 한때는 시련을 겪고 억지춘양이라 달갑지 않은 이름까지 얻는다. 흔히 춘향전을 빌어 변 사또의 갑질로 춘향의 수청을 빗대어 억지춘향이라고도 하지만 이와는 다르다. 억지춘양이란 일제강점기 때 왜놈들이 춘양과 울진, 강원도 등지에서 산판 한 소나무를 춘양 땅으로 죄다 모은 뒤 이를 실어내기 위해 억지 철로를 건설한데서 유래된 단어다.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백두대간 수목원.

 

정문을 나서자 우산대에 우산이 나란히 꽂혀있다. '빨주노초파남보'무지개색깔을 띈 무지개우산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비가 오면 우산으로 사용하고 오늘처럼 햇볕이 쨍쨍하면 양산으로도 사용한단다. 탐방객이라면 어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탐방이 끝난 후에는 반납만 하면 된단다. 아닌 게 아니라 탐방객들 중 몇몇은 이미 쓰고 다닌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우산이 자연으로 들어가니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 낙엽처럼 나풀거린다.

 

입구의 왼쪽으로는 희색 나비꽃으로 보이는 꽃 단지가 활처럼 휘어져 이랑이랑 흐드러졌다. 때마침 역광을 받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조금 더 오르면 트램(전기자동차)정거장이고 추억의 정원이다. 가을철을 맞아 추억의 정원은 울긋불긋 한껏 치장을 마쳐 탐방객들을 맞고 있었다. 양탄자처럼 즐비하게 장식된 각종 국화꽃들이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머리가 허옇게 쉰 갈대는 서산을 기웃거리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 파파머리 할아버지처럼 하얗다. 수목원 관광은 도보로도 가능하지만 트램을 이용할 수도 있어 누렇게 늙은 호박과 옥수수가 풍기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한 후 오르는 길은 트램을 이용하기로 했다.

 

정거장에 대기하고 있는 트램에 탑승을 마치자 출발과 동시에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나온다. "왼쪽으로 보이는 나무가 가을철이면 열매가 발갛게 익는 마가목입니다." 이후에도 안내방송은 계속되었지만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중간기착지에 닿았는지 내릴 사람은 내리라는 안내방송이다. 잠시 뒤 트램은 떠났고 우리는 종착역에서 내렸다.

 

올라올 때 보인 풍경이나 종착역의 풍경은 추운지방답게 가을을 비켜나 일찌감치 겨울을 준비하는 듯 낙엽을 떨군 앙상한 가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수목원 내의 취사는 금지 되었지만 도시락 등 간단한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아닌 게 아니라 수목원 곳곳으로 벤치와 테이블을 겸비한 휴식공간이 뜨문뜨문 보인다. 점심시간을 한참이나 지난 시간대라 이용하는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고 거칠어진 바람결을 타고 보금자리를 떠난 낙엽만이 한잎 두잎 가을볕 속에서 몸을 뒤 짚는다.

 

 

◆가을야생화가 여행객을 맞다.

 

호랑이 숲으로 가는 길은 소로나, 차도나, 자드락길이나 어디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도 무난히 다닐 수가 있는 길이다. 일행은 산 쪽으로 난 자드락길을 택했다. 20~30여분이나 걸었을까? 가장먼저 만난 곳은 암석원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자작나무숲이다. 유목을 갓 벗어나 이제 한창 자라기 시작하는 자작나무다. 따라서 강원도 인제에 있는 자작나무숲이나 김천의 자작나무 숲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늦가을을 맞아 노란 물감을 뒤집어쓰고 나란히 선 모습이 보기에도 황홀하다.

 

자작나무는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 거린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껍데기에는 기름기가 많아서 불쏘시개로도 쓰며 차가버섯이 자라는 나무로도 유명하다.자작나무 바로 아래의 정원이 암석원이다. 암석원 한 중앙에는 가을철임에도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져 하얗게 머리를 푼다. 그 아래로는 바위와 어우러져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 각종 가을야생화가 아기자기하게 흐드러졌다. 호랑이를 찾아가는 길에 절로 힘이 솟는다.

 

 

 

◆수목원의 명물인 호랑이

 

수목원 최고의 인기는 아마도 호랑이 인 듯싶다. 호랑이 숲은 1만1천500평 규모로 조성된 대규모 숲에 백두대간에 살았던 시베리아 호랑이를 보존 및 전시하는 시설로 2017년에 2마리를 방사했지만 한 마리는 폐사했다. 그 후 다시 2마리를 더 들여와 현재 3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호랑이 숲은 자작나무숲을 돌아서 아래로 내려오자 곧바로 보였다. 이제는 호랑이와 마주할 수 있다 싶어 뛰어 갔더니만 앗~불사! 철망으로 둘러친 우리 안에서 녀석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둘러선 관광객들이 "호랑아 일어나라!"애타게 불러보지만 못 들은 척 내 지금 할 일은 오직

 

호랑이는 뭇 짐승들 중 최상위 포식자로 용맹도 하지만 잠이라는 듯 꿈쩍도 하질 않는다. 아쉬움이 다락같이 남아 쉬 자리를 뜨질 못한다. 전설이나 우화, 설화 등에 따르면 어리석고 우매한 동물로 종종 등장한다. 어느 것이 진짠지 또 어느 것이 가짠지는 중요치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산신령처럼 인자한 모습으로 때로는 흉악한 살인범으로 등장하는 호랑이의 이야기들, 그 중 몇 가지를 들어본다.

 

 

소백산 희방사 창건에 대한 두운조사와 서라벌 대부호의 딸에 관한 설화, 계룡산 청량사의 남매 탑에 얽힌 설화, 호가호위(狐假虎威: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란 사자성어가 그렇고 해님 달님 이야기가 그렇다. 그 중 백미는 아무래도 곶감이란 말에 도망갔다는 어리석은 호랑이 이야기가 아닐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호랑이가 몸을 일으켰다. 관광객들은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시선은 웬 횡재냐 싶어 일제히 호랑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다. "야~ 멋지다."를 연발한다. 그 한 번의 몸놀림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를 듬뿍 받은 기분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호랑이, 잠시나마 늠름한 자태를 보인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고맙다. 호랑아~"란 말이 입안서 절로 웅얼거려진다.

 

 

돌아오는 길은 산 아래로 물이 흐르듯 가지런하게 누운 자드락길을 택했다. 타박타박 걷는 길에 거울연못에 들렸다. 언젠가 매일신문을 통해서 "英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 겨울연못 촬영, 정원 부문 2위"란 기사가 생각나 호기심이 더했다. 한낮이고 겨울이 아닌 가을철이라 감흥은 반감이지만 아담한 연못은 얼굴이 고스란히 비칠 정도로 깨끗하고 맑았다. 거리만 가깝다면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 겨울철이면 한번 도전해 보고픈 마음이 인다.

 

생각만큼 길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길이다. 탐방의 막바지에서 선물처럼 백말 한 마리를 만났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타던 '적로'란 말이 저렇게 의젓하고 음전했을까? 빨갛게 타오르는 단풍을 배경으로 사람이 있든 없든 그저 풀을 뜯는다.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롭고 한갓지다. 한참을 지켜보노라니 어느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절로 동화된 듯싶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편집위원 lwonss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