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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연평도 포격 10년·(1)]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흔적

"포격 기억은 평생 가겠지만, 그보다 고향 버리는 게 어렵다"

 

 

대연평도 피해 대부분 보수됐지만
구멍 뚫린 가드레일에 파편 흔적

민간인 희생자 기리는 추모비도
軍은 당시보다 2~3배 전력 증강
대피소 이동훈련 주민 몸에 배어
"어르신들 사격훈련에도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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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인천 연평도에 170여 발의 포탄을 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의 흔적은 섬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지난 19일 오후 찾은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10년 전 북한의 포격으로 발생한 피해는 대부분 보수가 이뤄졌지만, 곳곳에서는 여전히 포격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도로 철제 가드레일에는 약 1m 구간에 20개가 넘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연평도성당 인근 건물 벽에는 약 10㎝ 길이의 철제 파편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울타리의 철제 기둥 역시 곳곳이 '찢어져' 있었고 포격으로 부서졌던 종합운동장 외벽은 여전히 철제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난 채 구멍이 나 있었다.

당시 포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의 무차별 폭격에 우리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다. 해병대원 2명이 숨진 자리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표시가 있다. 고(故) 서정우 하사가 숨진 자리에는 그의 해병대 모표가 박힌 소나무가 있다.

당시 휴가를 나가려던 고 서정우 하사는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휴가를 포기하고 중대로 복귀하다 전사했다. 소나무에 박힌 해병대 모표는 그가 쓰고 있던 모자에 있던 것으로, 포격의 충격으로 떨어지면서 이 나무에 박혔다고 한다.

고 문광욱 일병이 숨진 자리에도 그가 전사한 곳임을 알리는 표시가 있고, 근처에는 민간인 희생자 2명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있다.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위령탑에는 한미연합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가 보낸 근조 화환도 놓여져 있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모든 대원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상기할 수 있도록 훈련을 진행한다"며 "연평도는 포격 당시와 비교해 2~3배의 전력 증강이 이루어졌고, 만반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포격 이후 연평도 주민들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 대피소 이동도 몸에 배었다고 한다. 옹진군의 협조로 들어간 1호 대피소에는 비상진료소와 취사실, 발전기실 등까지 마련돼 있다.

이 대피소는 연평도 대피소 중 가장 큰 면적으로, 466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다. 비상식량과 담요까지 있어 장기간 체류가 가능하다. 연평도에는 소연평도를 포함해 모두 8곳의 대피소가 있다. 대부분 포격 사건 이후에 새로 만들어졌다.

북한이 우리나라 영토를 직접 공격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연평도 포격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픔에도 연평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연평도 토박이인 이모(54)씨는 "아직도 어르신 중에는 우리 군 사격 훈련에도 놀라는 분들이 있다"며 "그때의 기억은 평생 가겠지만, 그보다 고향을 버리는 게 더 어렵다. 연평도에는 주민들이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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