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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광주 탈북민들 “떠나온 북녘, 추석 되니 더 그립네요”

[광주지역 탈북민들의 추석]
두고 온 가족생각 그리움 사무쳐
어울림 농장 찾아 서로 다독여
코로나에 합동차례 취소 ‘쓸쓸’
광주시민 온정에 그나마 ‘위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 이름만 들어도 넉넉해지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것이 추석 귀향길이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탈북민들은 갈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북녘의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올해 추석을 보내야할 처지다.

광주지역 탈북민들은 매년 추석 때 합동 차례를 지내며 동향 사람들끼리 그리움을 달래왔지만 지난해부터 코로나로 인해 이마저도 취소되면서 한층 더 쓸쓸한 명절을 보내야하는 상황이다.
 

광주 시민단체인 시민행복발전소는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광주드림봉사단과 함께 지난 12일 명절 선물을 마련, 이들에게 전달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키즈카페를 운영중인 김유라(가명·여·41·)씨는 16세에 어머니와 북을 떠나 중국을 거쳐 지난 2009년 한국 땅을 밟아 12년 째 한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명절 때마다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아버지 생사를 알 수는 없고,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더욱 고향이 그립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직접 운전해 어머니 모시고 북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린시절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 사진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김씨가 중국에 있을 때, 공안을 피해 어렵게 보낸 돈으로 산 새옷을 입은 외할머니가 이모, 외삼촌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김 씨는 “남한에서 결혼 후 맏며느리로 모든 제사를 지내지만, 어린시절 자신을 예뻐했던 외할머니의 제사는 한번도 지내지 못하고 성묘 한번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미어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외할머니의 음력 생신이 추석 언저리여서 명절만 되면 더 외할머니 생각이 사무친다. 음력 8월이라는 것만 알고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의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은 모두 기억하지만, 당장 외할머니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죄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탈북한 채명길(가명·여·48)씨는 명절이면 탈북민들의 공동 농장인 광주시 광산구 본량동의 주말농장을 찾는다. 채씨는 ‘북청물장수’로 잘 알려진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으로 탈북 당시 부모님과 언니·남동생을 두고 홀로 떠나왔다.

중국에서 5년을 살다 지난 2013년 한국으로 들어 온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과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광주 사람이 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가족과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다. 향수병과 우울감으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채씨는 간호조무사 일도 그만뒀다. 그래도 가족이 생각날 때면 광주드림봉사단이 운영하는 광산구 본량동 ‘한반도 어울림 농장’을 찾아 마음을 달랜다. 탈북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농장이라 여기에 가면 8~20명의 탈북민들과 고향 얘기를 할 수 있다. 깻잎, 상추 등 유기농 채소를 키워 반찬도 만들고 인근 독거노인들에게도 드린다.

채씨는 “가족을 만나고 고향땅을 밟아보는 날이 오면 좋겠다”면서 “탈북민들을 같은 처지끼리 서로 만나 아픔을 나누고 위안을 받으며 견딘다”고 웃었다.

지난 2010년 고향인 함경북도 나진에서 넘어온 나은혜(가명·여·67)씨는 추석을 앞두고 며칠째 북녘땅에 두고 온 아버지와 두 아들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브로커를 통해 주고 받던 아버지와 아들의 소식마저 끊겼다.

나씨는 “지난해부터 아버지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답답하다”면서 “나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봉사단 활동을 하는 나씨는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식사를 차려드리고, 집안 청소를 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 나씨의 머리 속엔 아들들과 도란도란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웃음꽃을 피웠던 기억과 어머니 산소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던 생각이 가득하다.

나씨는 “북을 떠나면서 다시는 어머니 산소를 못 찾는 불효자가 됐다.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명절음식 생각도 난다. 고산지대인 나진에서 많이 나는 감자로 만들어 먹던 감자떡과 감자전도 한국에서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나씨는 올 추석 때 탈북민들과 만나 명절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허전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 생각이다. 나씨는 “아버지를 언제 만날 지 모르지만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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