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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 강원의 명소는 지금]홍천강 美景 바라보며 한시 짓고 술잔 기울이니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구나

(14)홍천의 문화공간 범파정·사미정

 

 

선인들 홍천 대표하는 누정 꼽은 `범파정'
당시 관아의 동쪽 2리 떨어진 곳에 위치
1940년 강원도지 `지금은 없어졌다' 기록
범파정 읊은 시 많아 `창작의 공간' 방증
`지역의 대표 유산' 복원하자는 여론 일어
결운리 은거했던 `이구'가 지은 `사미정'
범파정보다 상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
후손들 강가서 물러난 자리에 다시 세워


누정은 누대와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누(樓)·정(亭)·당(堂)·헌(軒)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누정에 오르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시를 짓기도 하고 유흥을 즐기기도 한다.

때로는 인륜의 도를 가르치던 장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각종 모임을 갖기도 한다.

홍천 읍내의 학명루, 사미정, 범파정,

관수당, 야로정, 양망헌, 소학정

등이 대표적인 누정이다.

선인들은 홍천을 대표하는 누정으로 범파정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행기나 지리지 등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범파정을 노래한 한시는 100여 수 이상이 된다. 홍천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었다.

박태순은 “홍천은 깊은 골짜기에 있다. 오직 범파정만이 나라 안에 명승으로 불린다”라고 했다. 김기도는 홍천을 노래한 `화산팔경(花山八景)'에 범파정을 포함시켰는데, 다섯 번째가 `파정작주(破亭酌酒)' 즉 `범파정에서 술 마시기'이다. 범파정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여덟 개의 경치를 노래한 `범파정 팔경'도 널리 알려져 시인들이 화답하곤 했다. 공작산에 감도는 구름, 우령(羽嶺)으로 날아가는 학, 덕진(德津)의 돛단배, 모래톱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 돌길 걸어가는 스님, 화양강에 낚싯대 드리우기, 긴 숲의 저녁 연기, 맑은 강에 뜬 초승달은 지금도 유효한 홍천의 아름다움이다.

범파정은 관아의 동쪽에 있었고, 2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건물 규모는 8칸이었다가 13칸으로 중수되었다. 1940년에 간행된 `강원도지'는 범파정에 대해 “객관 앞에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알려준다.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940년 이전에 범파정이 훼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행기 속에서 범파정의 모습이 자세하다. 범파정은 완상의 공간뿐만 아니라 숙박의 공간이었다. 관청 건물이지만 홍천강 강변에 별관으로 있었다. 주변에 관수당과 양망헌도 나란히 있었다. 범파정은 빈관의 문루였다. 빈관은 객사를 의미하고, 문루는 문 위에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지은 집이다. 범파정을 읊은 시가 많았다는 것은 창작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범파정의 미학은 화려함에 있지 않았다. `질박하면서 화려하지 않음(樸而不華)' 또는 `소박하고 간략한(朴略)' 아름다움이다. 자리 잡은 지세가 강가 높은 곳이라 `훤히 트이고 높고 시원함(軒豁高敞)'과 `시원하게 뚫림(爽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물결 위에 떠 있는 듯해서 범파정이라 하였다. 범파정을 복원하자는 여론은 홍천을 대표하는 건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100여 수가 넘는 한시가 지어진 문화공간에 대한 후손의 당연한 요구다.

사미정(四美亭)은 이구(李龜)와 관련 있다. 이구는 호가 사미정으로 이제현의 7대손이다. 그는 동생 이원이 김종직의 문인으로 화를 당하는 것에 연좌되어 홍천으로 유배되었고, 홍천 결운리에 터를 잡았다.

이구는 은거하면서 양신(良辰:좋은 때), 미경(美景:아름다운 경치), 상심(賞心:완상하는 마음), 낙사(事:즐거운 일)라는 뜻의 사미정을 자신의 호로 삼고 정자를 지었다. 정필달이 범파정에서 물을 거슬러 올라가 사미정 아래에 이르렀을 때, 깨끗한 모래와 비췻빛 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범파정에서 물을 거슬러 올라가 사미정 아래에 이르렀다는 정보는 사미정이 범파정보다 상류에 있음을 보여준다. `화산팔경' 속에 사미정이 등장한다. `사미정에서 차를 다림(美亭煮艾)'이 홍천을 대표하는 멋 중 하나였다. 사미정에도 한시가 남아 있고, 여행기 속에서도 사미정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후손들에 의해 강가에서 조금 물러난 자리에 복원되었다. 갈마곡리 사미정길에 정자가 있다. 이밖에 학명루, 관수당, 야로정, 양망헌, 소학정 등도 시문에 자주 오르내렸다.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누정이 있었던 이유가 긍금하다. 홍천강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