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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옥스퍼드 대학생 오만이 빚은 대학살 비극

[유럽 인문학 기행-영국] 옥스퍼드 유니버시티 처치

“젠장, 이 집 술 맛은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런 걸 술이라고 팔아도 되는 거야?”

 

“이래 놓고 술값은 얼마나 비싸게 받아. 주인이 양심은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1355년 2월 10일 영국 옥스퍼드의 퀸 거리와 성 알데이츠 거리의 교차로에 있는 선술집 ‘스윈들스톡 태번’에서 두 젊은이가 술을 마시며 불평을 털어놓고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학생인 월터 스프링호이제와 로저 드 체스터필드였다.

 

이들은 이날 수업 도중 교수로부터 험한 소리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하려면 학교를 때려치우라는 이야기였다. 잔뜩 화가 난 두 학생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술집으로 달려갔다. 술 말고는 도저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간 곳은 평소에도 수시로 들르던 술집이었다. 가게 주인은 존 크로이든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돈만 아는 얌체’로 널리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원래 옥스퍼드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수입해온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술 공장이 많은 지역이었다. 이곳의 술은 옥스퍼드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도 잘 팔려나갔다. 그러나 술의 품질은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날따라 스윈들스톡에서 내놓은 술은 맛이 형편없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나쁜 상태였던 스프링호이제와 체스터필드는 화가 더 났다. 마침 가게 안쪽에서 크로이든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였던 두 사람은 주인의 얼굴을 보자 신경질이 치밀어 올랐다.

 

“크로이든 씨, 도대체 이게 뭡니까? 이런 걸 돈 받고 술이라고 팔아도 되는 겁니까?”

 

“학생들. 그게 무슨 말인가? 얌전히 술이나 마시고 갈 일이지, 왜 초저녁부터 시비야?”

 

“크로이든 씨, 말이 왜 그래요? 시비라니…. 술맛이 영 형편없잖아요. 혹시 가짜 술 아닌가요?”

 

“학생들이 못 하는 말이 없네. 그러면 내가 사기꾼이란 말이야?”

 

“사기꾼이 아니라고 말할 이유도 없지. 원래 당시 하던 짓이 사기꾼이나 마찬가지잖아. 형편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뭐야.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군. 자네들 집이나 학교에서 배운 게 그것밖에 안 되나? 동네 불량배보다 못한 것들 같으니라고….”

 

“아니 이 사람이…. 호색한에 사기꾼 주제에 입이 열려 있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되는 거야?”

 

크로이든과 다투느라 취기가 더 오른 스프링호이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인이 내던진 모욕적인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술잔을 크로이든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크로이든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술 세례는 피할 수가 없었다.

 

 

크로이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술 취한 학생들이 행패를 부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나름대로 유지로 행세하며 마을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얼굴에 술을 끼얹은 것은 그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주민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당장 가게 바로 앞에 있는 성 마틴 교회에 가서 종을 울렸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에 걸쳐 힘차게 거칠게 “땡~땡” 하며 줄을 잡아당겼다. 마을주민들은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교회 종이 울리면 긴급한 일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 앞에 모이곤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이든이 종을 울리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200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모였다.

 

“누가 종을 울렸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존 베레포드 시장이 숨을 헐떡이며 교회 앞에 나타나 말을 꺼내다. 주민들은 웅성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서로 추측하고 물어보고 있었다. 그때 크로이든이 나섰다.

 

“여러분,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래도 먹고살려고 지금까지 얼마나 참았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크로이든, 그게 무슨 말인가? 왜 그렇게 흥분했나?”

 

크로이든은 시장의 질문을 받고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두 학생이 자기에게 어떤 식으로 시비를 걸었으며, 어떤 말을 건넸으며, 술잔을 어떻게 얼굴에 던졌는지를 흥분해서 설명했다. 불리한 내용은 적당히 빼거나 각색하고, 유리한 내용은 부풀리거나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뭐야. 젊은 것들이 크로이든 씨 얼굴에 술을 끼얹었다고…. 아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 있나. 아무리 좀 배웠기로서니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에게 어떻게 그따위 행동을 할 수가 있어?”

 

크로이든의 말을 들은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그들은 참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에게 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이었다. 주민들이 보기에는 학생들은 이상한 옷을 입고 다녔고, 영어 대신 주로 라틴어를 사용했다.

 

주민들은 학생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학생들이 주민들을 흘깃 보면서 낄낄 대며 웃을 때는 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 뭐라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월세가 비싸니, 빵 값이 비싸니’ 하면서 불평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베레포드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옥스퍼드의 법과 질서를 지키고 치안을 유지하는 사람인데, 대학생들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에 있어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일반적인 관습과 국가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대학교 행정당국에 의해서만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실로 갑시다. 거기서 두 학생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합시다.”

 

베레포드 시장은 유니버시티 처치에 있는 총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교회 앞에 모여 있던 마을주민들도 시장의 뒤를 따라 대학교를 향했다. 이번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결의가 그들의 얼굴에 넘쳐나고 있었다. 시장은 총장실 앞에서 주민들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총장 비서에게 험프리 셜튼 총장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잠시 후 총장 비서가 들어오라고 전했다.

 

“시장님.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시정 돌보시느라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우선 차 한 잔 드릴까요?”

 

“아니, 차는 됐습니다. 총장님.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돼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왔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차근차근히 말씀해보세요.”

 

​ 베레포드 시장은 셜튼 총장에게 오늘 스윈들스톡 태번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두 학생이 언제 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크로이든에 어떤 말을 했고, 술잔을 어떻게 집어던졌는지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이야기했다. 총장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차분하게 시장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설명을 마친 시장은 마지막으로 요구조건을 이야기했다.

​“총장님. 지금 밖에 있는 주민들은 흥분한 상태입니다.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두 학생을 꼭 처벌하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그리고 처벌 내용을 나중에 제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장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모든 게 사실이라면 두 학생의 행동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벌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대학교는 치외법권 지역입니다. 처벌을 하든 안하든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총장님. 그런 말로는 주민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으로서 학교의 권위와 전통에 손상을 끼치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셜튼 총장은 한마디로 베레포드 시장의 요구를 거절했다. 시장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화가 나서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총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주민들은 모두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무시됐습니다. 오늘 저녁에 마을 전체 회의를 열 것입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대학교 측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음날 아침 옥스퍼드 전체 주민 5000명 가운데 2000명이 성 마틴 교회 앞에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와 곡괭이 등 각종 흉기가 들려 있었다. 금세 무슨 일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한시라도 참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입에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몽둥이를 손에 든 크로이든이 주민들 앞에 나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참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우리를 무시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말로는 안 됩니다. 이제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사과하든지 아니면 마을을 떠나든지 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서 모조리 부숴버립시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모두 흠씬 두들겨 팹시다.”

 

크로이든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가 맨 앞에 서고 주민들은 뒤를 따라 성큼성큼 유니버시티 처치 쪽으로 걸어갔다. 베레포드 시장은 교회 첨탑 위에서 주민들의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고 있었다.

 

주민들이 대학교 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은 금세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위기를 느낀 학생들은 유니버시티 처치의 종을 울렸다. 하지만 모인 학생들은 200여 명에 불과했다. 주민들에 비해 수에서 절대 열세였다. 게다가 몽둥이 등을 든 주민들과 달리 학생들은 맨손이었다. 총장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모였던 학생들 중에서도 일부는 슬그머니 도망가 버렸다. 남아있는 학생들은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는 달아날 수도 없었다. 주민들이 유니버시티 처치 주변에 포위망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조금씩 학생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갔다. 학생들과의 거리는 5m, 3m, 1m로 점점 줄어들었다. 학생들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버렸다. 도망칠 구멍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주민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모두 죽여 버렷!”

 

“와~!”

 

함성을 지르면서 주민들은 앞 다퉈 학생들에게 달려들었다. 갇힌 학생들을 향한 집단 몽둥이질이 시작했다. 학생들과 주민들이 서로 뒤섞이자 곳곳에서 틈이 생겼다. 일부 학생들은 그 틈을 이용해 도주를 시도했다. 다행히 달아난 학생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다시 잡혀 구타를 당했다. 마을 주민들의 폭행은 이틀이나 계속됐다. 주민들은 대학교 곳곳은 물론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대학생들을 찾아내 집단으로 폭행했다. 일부 대학생들은 떼를 지어 도망 다니며 주민들에게 저항하기도 했다.

 

주민들과 학생들의 싸움은 엄청난 희생을 냈다. 불과 이틀 만에 학생 63명이 숨졌고, 주민들도 30명이나 죽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날은 마침 ‘성 스콜라스티카의 날’이었다. 그래서 이날 폭동을 역사가들은 ‘성 스콜라스티카 데이 폭동’이라고 불렀다.

 

 

폭동이 잠잠해지자 베레포드 시장은 에드워드 3세 국왕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우드스톡으로 달려갔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두들겨 맞아 숨진 사건인 만큼 정부에서도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측에서 먼저 손을 쓰기 전에 국왕을 설득해야하겠다는 게 그의 속셈이었다. 하지만 일은 그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국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무식한 주민들이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집단으로 두들겨 패서 63명이 죽게 만들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전하, 흥분한 주민들의 잘못이 큽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학생과 대학교 측입니다. 제게 처리를 맡겨주시면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잘 정리하겠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미 조사관을 옥스퍼드로 보내 진상을 조사했다. 처벌 방안도 이미 만들었다. 며칠 내로 통고하도록 하겠다. 시장은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짐은 불쾌하도다.”

 

 

베레포드 시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국왕의 진노를 샀기 때문에 관대한 처벌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목숨이라도 부지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아나려도 달아날 곳이 없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지난 며칠간의 사태가 마치 악몽처럼 느껴졌다.

 

며칠 뒤 국왕이 보낸 사람이 옥스퍼드 시청에 도착했다. 그는 국왕의 날인이 찍힌 두루마기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베레포드 시장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 국왕의 명령을 들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년부터 폭동이 일어난 날에 유니버시티 처치에서 열리는 미사에 시장이 참석하라. 시장은 무릎을 꿇고 희생된 학생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 ‘옥스퍼드 대학교의 특권은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고 해마다 맹세해야 한다. 희생자 한 사람당 1펜스, 모두 63펜스를 해마다 대학교 측에 기부하도록 하라. 앞으로 옥스퍼드 시장이 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명령을 계속해서 따라야 한다.”

 

옥스퍼드 시장이 유니버시티 처치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 기도회에 참석해서 사과하는 관행은 1824년까지 469년이나 이어졌다. 매년 시장 일행이 시청에서 유니버시티 처치까지 걸어갈 때면, 학생들이 그들을 향해 야유를 퍼붓거나 심지어 때리기도 했다. 시장들은 과거 마을주민들의 잘못 때문에 수백 년 동안이나 이런 수모를 참아야 했다. 옥스퍼드 시장의 수모는 1825년에야 끝났다. 시장이 추모 기도회 참가를 거부한 것이었다. 국왕이나 옥스퍼드 대학교 측은 아무런 대응도 내놓지 않았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