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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북유럽 4개국 기행, 복지사회·평화국가의 길 걷다

문명의 모자이크 유럽을 가다 1 / 정수일

 

〈문명의 모자이크 유럽을 가다 1 북유럽〉은 남파간첩 출신으로 대단한 문명교류학자인 정수일(일명 무하마드 깐수)의 세계문명 기행서다. 이 책이 품은, 유럽문명의 민낯을 드러내는 유려한 통찰력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책의 기본 생각은 동양과 서양의 우위를 다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공통의 조상을 지닌 인류는 ‘세계 일체성’을 바탕 삼아 숭고한 보편가치를 다 같이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이 선진이고, 동양은 후진이라는 해묵은 통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선진 대 후진’ 통념은 최근 200년간의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거다. 외려 17세기 독일 라이프니츠와 프랑스 백과전서파는 중국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덕치(德治)의 완벽한 윤리를 갖춘 나라라며 온갖 찬사를 쏟아부었다. 중국이 더 낫다는 게 아니라 역사는 부침했을 뿐이라는 거다. 다행히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세계사적 사건은 동·서양이 인류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조우한 것으로, 그에 따라 이제 고루 볼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남파간첩 출신 저자, 세계문명 기행서

‘선진 서양, 후진 동양’ 해묵은 통념 타파

헤브라이즘·헬레니즘, 서아시아서 탄생

동·서양 차이, 상이한 자연환경에 기인

 

둘째 같은 맥락에서 유럽문명에 대한 과대포장을 걷어내야 한다는 거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유럽문명의 2대 근원이라는 주장은 틀린 소리라고 한다. 두 사상은 서아시아에서 탄생해 성숙했으며 유럽과는 연관성이 희박하다. 외려 유럽문명의 근원은 에게문명 혹은 그리스문명이다. 거기에 점차 기독교와 게르만적 요소가 접합된 거다. 그런데 고대 아랍사(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오리엔트’란 이름으로 유럽사 서막으로 둔갑시키고, 동로마제국의 비잔틴문명도 유럽문명으로 편입시키고, 특히 이슬람문명도 암흑의 중세를 뛰어넘는 역사로 슬쩍 가져다 놓기 일쑤라는 거다. 이런 얼치기와 허위가 없다는 거다. 5세기 로마 멸망 이후 유럽문명은 서방세계의 3대 문명권(이슬람·비잔틴·유럽문명) 중 하나에 불과했다. 유럽문명에 대한 온갖 과장 오해 맹종을 극복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지향적 보편문명을 창출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한다.

 

셋째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분명 있기는 하다. 그 차이는 천부적 혜택의 자연과 변화무쌍한 자연이라는 상이한 자연환경에서 생겼다. 혜택의 자연은 자연과 인간의 융합에 근거해 종교성이 강한 인도문명과 예술성이 뛰어난 중국문명을 탄생시켰고, 척박한 자연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분리에 근거해 유럽철학과 과학혁명의 예에서 보듯 사유·학문·과학의 유럽문명을 직조했다.

 

 

이런 바탕에서 이번 1권은 북유럽 편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4곳을 기행했다. 저자가 한반도 지식인으로 북유럽 기행에서 얻어낸 것은 복지사회와 평화국가로의 길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3대 복지국가다. 그중 스웨덴 복지 모델은 현재 인류가 도달한 으뜸 수준의 모델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절충한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다. 16세 자녀까지 보육 지원, 대학을 포함한 전반적 무상 교육, 사회적 소득격차를 최소화하는 연대임금제, 실업자·창업자에 대한 탄탄한 지원 체계, GDP 9%를 차지하는 높은 국가 의료비 지원 등은 이미 1950년대에 완비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타협 협력 공존, 소박한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스웨덴 전통문화 덕이다. 저자는 “한반도의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은 역사적 문화적 뿌리와 배경 전통 슬기 도덕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8000만 겨레는 복지국가를 향한 희망찬 뿌리를 살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나라 핀란드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80여 년간 독자적으로 개척해온 중립외교에 주목한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놓인 한반도에 중요한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주변국과 마찰 없이 독립을 보장받는 ‘소극적’ 중립외교에서 자주국방과 비군사동맹을 축으로 하는 적극적 중립외교로 나아가 보기 드물게 성공한 사례라고 한다. 두 단계의 분계선은 1990년대 초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였다. 26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적극적 중립외교의 틀을 마련한 케코넨은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 핀란드의 외교정책은 예방외교다.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라는 노련한 충언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북유럽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올곧은 인류 보편문명을 지향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는 거다. 이 시리즈는 동유럽 중유럽 서유럽 편으로 이어진다. 정수일 지음/창비/484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