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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자연의 신성함 앞에서 福을 기원하다

(117) 무속신앙
당산봉 동남쪽 중턱 ‘차귀당’
3대 국당의 하나… 뱀신 숭배
소각됐다가 1990년에 복원돼

조선 후기 무속과 유교의 공존
목사 주관 한라산신제 등 기록

예술성 인정받은 ‘제주큰굿’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3대 국당(國堂)의 하나인 차귀당

당오름으로도 불리는 당산봉 동남쪽 중턱에는 오래전 뱀신을 모시던 차귀당이 있었다. 차귀당은 탐라시대부터 제주시의 광양당과 안덕면의 광정당(덕수리 소재)과 함께 3대 국당이라고 전해진다.

광양당은 한라산 수호신을 모시는 당이었고, 차귀당과 광정당은 뱀신을 모시는 당이었다.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소각(消却)된 차귀당은 수년 후 복원되었다가 1882년(고종 19년)에 다시 훼철되었고, 1990년 지역 주민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1679년(숙종 5년) 순무어사로 제주에 왔던 이증이 제주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일기체로 적은 ‘남사일록’에는 ‘차귀당은 차귀악(당산봉)의 기슭에 있는데, 뱀신(蛇鬼)을 모신 무속사당이다. 지붕·벽·들보·초석에 무리진 뱀들이 얽혀 있으나, 제를 지낼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상서롭다.’라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편찬된 ‘증보 탐라지’에도 ‘대정현 사직단이 현청 서쪽 3리에 있으며, 대정현의 성황사를 차귀당이라 하며, 민간에서 뱀신에게 제사 지낸다. 집의 벽과 들보며 초석에 뱀 무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 나타나지 않아야 길한 조짐으로 여긴다.’라고 쓰여있다.

조정에서는 사직단·성황당·여단(厲壇)을 삼단(三壇)이라 하여, 군현마다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성황사에 모셨던 성황신은 중국은 물론 고려와 조선 시대에서도 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졌다.

대정현에서는 성황사를 차귀당으로 대신 하였으며, 제례의식은 유교식이 아닌 무속 방식이었다. 뒷동산당·소록밧당 등 여러 당이 있었던 고산리에서는 지속적으로 본향당인 차귀당과 용왕신을 모시는 개당에서 단골들이 제를 지낸다.

 

 

▲국가제사인 한라산신제와 풍운뇌우제 그리고 여제(厲祭)

제주도에 천주교의 성당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0년대이고, 개신교의 교회가 들어선 것은 1900년대이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제주에서는 절오백 당오백이란 말이 전해올 정도로 민간신앙의 뿌리가 깊다.

본토에서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불리는 당을, 제주에서는 흔히 할망당이라 불리어왔고, 마을의 여러 당 중에서 중심이 되는 할망당이 본향당으로 불리곤 한다.

한편으론 유배인들의 훈학과 조선 조정에 의한 유교문화가 제주에 파급되면서 무속과 유교문화가 공존하기도 했다.

1843년에 쓰여진 이원조의 ‘탐라록’에는 목사가 주관하여 한라산신제와 풍운뇌우제 등의 국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여럿 보인다. 탐라록에 쓰여진 여제와 성황신에 관한 글 중에는 ‘목욕재계하여 망경루에서 밤을 지새고 성황발고제(城隍發告祭)를 행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성황발고제는 여제를 지내기 전에 성황신에게 뭇 영혼들을 불러 모아달라고 비는 의식이고, 여제는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무사귀신(無祀鬼神)들에게 드리는 제사로, 돌아가 쉴 곳이 없는 귀신인 여귀를 달래는 제사이다.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낸 사흘 후 주인이 없는 외로운 혼령들에게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주었던 것이다. 성황신은 홍수와 가뭄으로 죽은 귀신, 굶주림이나 병에 걸려 죽은 귀신 등 변괴로 죽은 혼령들까지 관리하는 신이다. 제주에서는 성황단을 높은 단 또는 상단이라 하고, 여단을 낮은 단 또는 하단이라 불렀다.

‘탐라순력도(1702) 제주조점’에는 여단(厲壇)이 있던 곳이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이곳 근처에는 사직단과 함께 풍신·운신·뇌신·우신에게 제사 지내던 풍운뇌우단도 있었다.

선인들은 안전한 항해를 위해 바람과 구름과 천둥과 비를 관장하는 풍운뇌우 신들에게 제주시 무근성 해안가에서 제단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냈다.

또한, 이곳에서 가까운 향교 근처의 높은 지대에는 탐라국에서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인 ‘용담동 제사유적’이 있다. 최근 제주시에서 이곳에 제사유적 안내판을 조성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제주도 큰굿

2021년 정부는 제주큰굿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제주큰굿은 열두본풀이로 전개되는 사설을 지니고 있다.

본풀이란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의 중 심방이 근본 풀이를 구송(口誦)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점, 천지창조와 생사관이 잘 투영된 점, 사설이 제주어 사전이라 할 정도의 문화자산이란 점 등이 제주큰굿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주요 요인이라고 한다.

삼성혈 부근에 있었던 광양당은 제주선인들이 섬겼던 신들의 총본산으로, 심방들에 의해 삼신인을 제사 지내기도 했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1486)과 탐라지(1653) 등에는 광양당을 한라호국신사로 기록하고 있다.

1702년 이형상 목사는 숭유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도내의 음사, 절간 등 130개소를 불태워 없애고 광양당을 폐지하였다. 1843년 이원조 목사가 편찬한 ‘탐라지 초본’에는 큰굿이 행해졌던 광양당과 광정당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광양당은 한라산호국신을 제사 지내던 곳이다. 송나라 호종조(호종단)가 제주땅의 기운을 눌러버리고 돌아가는데 신이 매로 변하여 날아올라 호종조의 배를 격쇄하니, 죽도(차귀도) 바위 사이에 빠졌다. 조정에서는 그 신령스러움을 포양하여 광양왕에 봉하고 제사하게 하였다. 지금은 폐지되었다.…대정현 산방 서북쪽(덕수리) 큰길가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淫祠)이 있는데, 광정당이라 한다. 목사 이형상이 순행할 때, … 요망한 이무기가 나와서 독을 뿜으며 물으려 하니, 사명기(司命旗)를 세워 뱀을 베고 당을 불태우니 음사가 마침내 끊겼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