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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메트로폴리탄 뉴욕:핫플의 어제와 오늘]과거 사회운동 펼쳐졌던 브로드웨이 극장 지금도 자유정신 깃들어

 

 

2016년 말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뮤지컬 ‘해밀턴' 출연배우들 공연 전

트럼프 정부 비난 성명 낭독하기도

시민 의식의 발로 기능 재현된 일화

지금처럼 타임스퀘어 부근 브로드웨이와 7번 애버뉴가 만나는 지역에 극장가가 번영하기 시작한 건 정확히 맨해튼 순환전철이 들어선 1904년부터였다. 이곳은 맨해튼의 양대 기차역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과 ‘펜 스테이션'(Pennsylvania Station)으로부터 비슷한 거리, 삼각형을 이루는 꼭짓점으로 양 역으로부터 접근성이 좋아 맨해튼 밖에 사는 관객들이 기차로 통행하기 쉽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다.

음악과 춤, 노래가 결합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영국에서 인기를 누리던 전통적 대중음악극이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국에서 시작된 뮤지컬 코미디가 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과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TV가 등장하면서 20세기 중반 잠시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1970~1980년대를 거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1년), ‘캣츠'(1981년), ‘오페라의 유령'(1986년) 등 영국산 흥행작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아가씨와 건달들'(1992년), ‘헤드윅'(1994년), ‘시카고'(1995년), ‘라이언 킹'(1997년), ‘위키드'(2003년) 등 미국산 히트작들이 연거푸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지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Theater District)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관람객 수가 훨씬 많아졌고 레퍼토리도 더 다양해졌다는 것 정도일까. 여전히 아주 오래전 같은 건물을 약간 고치기만 해서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이 끝난 늦은 밤, 귀가하는 관객들을 태우기 위해 극장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전동인력거들이나, 극 시작 전 또는 브레이크 타임에 초콜릿이나 과자 매대를 메고 관객석을 왔다 갔다 하는 젊은 판매원들의 모습 등 몇 십년을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는 풍경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제는 브로드웨이 극장이 과거처럼 사회운동의 집합소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전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은 브로드웨이를 통한 시민의식의 발로(發露) 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필자가 뉴욕에 머물던 2016년 말,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의 일화 하나를 소개해보려 한다. 선거가 끝난 후 펜스 부통령 일행이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을 관람하러 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 뮤지컬 출연 배우들이 무대 시작 전 일종의 파업 비슷한 퍼포먼스를 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자유 정신을 해친다며 공연에 앞서 일렬로 서서 비난 성명서를 낭독한 것이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펜스 부통령 일행은 이 퍼포먼스를 코앞에서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고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 장면이 당시 미국 언론을 뜨겁게 달궜는데, 시민의식의 발로로서 기능했던 예전 브로드웨이의 자유 정신이 이 시대에 다시 재현된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좀 싸게 보려면 당일 티켓을 반값에 파는 맨해튼 곳곳의 티켓판매소(TKTS)를 이용하거나, 확률은 낮으나 인터넷을 통해 헐값의 로터리 티켓에 도전하는 방법이 있다. 티켓 가격은 누구나 다 알만한 글로벌 히트작인 경우 160~200달러 정도면 1층 오케스트라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다. 뮤지컬은 어떤 공연 장르보다 음악, 노래, 연기, 대사의 현장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소 비싼 값을 주고라도 앞자리 좋은 좌석을 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돈을 지불한 만큼 많이 얻어 가는 아주 솔직한 장르가 바로 뮤지컬이기 때문에 싸다고 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뒷좌석을 구하는 건 권하고 싶지 않다.

보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면 아주 유명한 대히트작들만 연상하는데, 실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연극들은 훨씬 다채롭고 실험적이며 자주 바뀐다. 물론 몇 년 이상을 롱런하는 히트작들은 몇 년씩 극장이 고정돼 있지만, 대부분 공연은 관객의 호응에 따라 극장과 공연 횟수가 자주 바뀐다.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 2011년), ‘스쿨 오브 락'(2015년), ‘킹키부츠'(2012년), ‘저지 보이스'(2004년), ‘알라딘'(2011년) 등 장기 히트작, ‘해밀턴'(2015년), ‘물랑루즈'(Moulin Rouge)(2019년), ‘식스(SIX)'(2021년) 등 화제작들도 많지만, ‘닥터지바고'(Doctor Zhivago)(2015년), ‘펀홈'(Fun Home, 2015년), ‘온유어핏'(On your feet, 2016년) 같이 짧게 지나가는 작품들도 무수히 많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영화보다 더 경쟁적이고, 에너지 넘치며, 쉴 새 없이 뜨고 지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예술시장판이라 표현하고 싶다. 브로드웨이가 얼마나 생동적이며 파격적인 시장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로, 필자가 뉴욕에 있던 2016년 당시 초대박 히트작이었던 뮤지컬 ‘해밀턴'의 티켓 호가(제일 앞자리)가 무려 2만달러대까지 치솟았다는 믿지 못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공연은 뮤지컬 해밀턴의 기획자이자 주인공 ‘린 마누엘 미란다'가 다시는 이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지막 공연이었고, 이를 보기 위해 당시 뉴욕의 내로라하는 호사가들이 모두 몰렸기 때문(당시 영부인 미셸 오바마도 보았다)이라고 하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매년 6월이면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토니상(Antoinette Perry Award for Excellence in Theatre) 시상식이 개최된다. 이 무렵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근방을 지나치다 보면 방송사(CBS)의 유명 앵커가 뮤지컬 배우들과 거리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만약 6월에 뉴욕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 광경을 절대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토니상 시상 당일에는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에서 시상식이 생중계되고, 길거리 관람석 의자에 많은 구경꾼이 앉아 웃고 떠들며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뮤지컬을 자신들이 발전시켜 대중화시킨 자신들의 예술 장르라 생각하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다. 그래서인지 토니상에 대한 애정 또한 매우 각별하다. 브로드웨이 근처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거창하게 오프닝을 개최하고, 24개 부문의 많은 분야에 시상하며, 시상식 자체를 언론과 방송에서 아주 무게 있게 다룬다. 오직 해당 시즌에 일정 규모(500석) 이상의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라야만 토니상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엄격한 자격조건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걸 뽐내는 듯 배타적이면서도 남다르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편집=홍예정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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