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강원일보) 빗장 푼 권력의 심장 속 2시간…대통령의 삶 가늠해보다

본보 기자가 찾아가 본 청와대

 

돗자리 깔고 있어도 제지하지 않는 공간으로
춘추관 앞 헬기장 잔디밭에 휴식 위한 그늘막 가득
의전 행사 치렀던 상춘재·유형문화재 침류각 눈길
인수문 지나 대통령 가족 지냈던 ‘관저' 포토존 인기

 

본관 내부 들여다볼 수 없었던 점 못내 아쉬워
청와대 상징 ‘푸른 기와' 인상적…대정원서 공연 만끽
칠궁·오운정·본관 뒤편 산책로 걷기는 다음 기회로
관람신청 다음 달 11일까지…하루 3만9천명만 입장


“이야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살고 있었네.”

“니는 경복궁 안 들렀나. 이게 무신 궁궐이라꼬.”

대통령 관저에서 앞서 가던 관람객의 옥신각신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났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의 공간인 청와대가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다.

아들이 청와대 관람 신청에 ‘당첨됐다(?)'고 뛸 듯이 기뻐하더니 기꺼이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자식의 뜻하지 않은 선물에 지난 13일 아내와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

강원도에서 서울 한복판을 거쳐 청와대를 찾아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지 않아 경복궁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기에 주차하는 데만 30분은 족히 걸린 듯했다. ‘경춘선 ITX'를 타고 편하게 다녀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목적지인 청와대가 나온다. 청와대 관람은 정문과 영빈문, 춘추문 세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날 오후 1시 춘추문에서 큐알(QR)코드를 보여주고 청와대에 입장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춘추관 앞 헬기장 잔디밭에는 파스텔톤의 고운 색깔로 치장한 그늘막 수십 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늘막마다 가족, 연인, 친구 등 다양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빈자리는 찾기 힘들 정도였다.

10여년 전 가족과 차를 타고 청와대 앞을 지나다 어린 자녀들에게 청와대의 상징과도 같은 파란색 기와라도 보여주려는 마음에 잠시 정차했더니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 이동하라는 경비원의 외침에 쫓겨나듯 차를 내달렸던 기분 상했던 기억이 스쳤다. 이제는 아예 돗자리 깔고 있어도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공간이 됐다는 생각에 격세지감이 들었다.

바로 앞에 있는 춘추관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게끔 맞배지붕에 토기와가 올려져 현대식 건물임에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대통령 기자회견과 프레스센터로 활용되는 곳이었는데, 촉박한 마감시간을 앞두고 기사 송고에 여념이 없을 동료 기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진땀이 날 정도였다. 그 다급한 심정을 알기에….

나무가 우거져 더운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 것만 같은 상춘재 옆길을 지나다 보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등록된 침류각을 잠시 들를 수 있다.

조금만 더 오르막길을 오르면 ‘어진 덕을 갖추고 장수한다'는 의미의 인수문(仁壽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대문을 만나게 된다. 굳게 닫힌 대문 양옆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대통령 가족이 살았던 관저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즈넉하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잘 정돈된 한옥이다. 아마도 대통령 개인 공간이자 소회의실 용도로 쓰였던 청안당(淸安堂)을 끼고 있어서인지 작은 규모로 비쳐지지는 않았다. 청안당 문 앞에 길게 늘어진 오래된 풍경이 전해주는 소리에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낮보다는 밤에 찾아가면 운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생활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포토존이었다.

관저에서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상춘재(常春齋)라는 한옥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일제가 무단 점령하고 세운 일식 건물을 철거하고, 양식 목조건물을 세웠다가 목재로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곳이다. 근대사의 뼈아픈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늘 봄이 머무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곳이다.

국내외 인사들에게 우리나라 전통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를 치렀던 공간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면 청와대의 상징인 본관이 등장한다. 구름이 몰려든 다소 흐린 날씨에 파란색 기와는 더욱 빛났고 선명했다. 본관 앞에는 배경으로 한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 아닐까.

청와대 앞 대정원에서는 때마침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돼 관람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전통 피리 소리는 청아했고, 꽹과리와 설장구 소리에 가슴이 절로 뛰었다. 사자놀이는 유쾌했다.

‘충성' 우렁찬 경례 소리와 함께 군인으로 이뤄진 사물놀이 팀이 빠져나오자 의장대가 오와 열을 맞춘 채 들어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총을 돌리고 또 높이 던져 받아내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찔함이 들 정도였다. 오랜 훈련이 있었기에 실수 없이 마무리했을 것이라는 애틋한 마음에 대정원을 빙 둘러앉은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청와대 개방 행사로 다양한 공연이 마련돼 있으니 공연시간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경내 정원에서 역대 대통령이 심은 기념식수를 찾는 것도 보물찾기와 같은 재미가 쏠쏠하다. 아담한 표지석이 대통령의 나무임을 알려준다.

청와대 정문 근처에 다다르니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귀가 솔깃했다. “도대체 내부는 언제 보여주는 걸까?”

본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추후 개방한다니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청와대 정문을 나섰다.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영빈관을 대충 둘러본 것과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사당인 칠궁과 경내 오운정, 미남불(보물 제1977호)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본관 뒤편으로 뻗은 산책로(북악산 등산로)를 걷지 못한 것에 진한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상징, 중심부, 심장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청와대는 그저 하나의 잘 정돈된 공간으로 비쳤다. 하지만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현장이었고, 그 변곡점에서 수많은 결정이 이뤄졌다.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대통령이 행정 수반이라는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 처연한 곳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온기가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 청와대에서 보낸 2시간 남짓은 기대 이상으로 신선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청와대 관람 신청은 당초 21일까지였지만, 국민적 인기에 부합해 다음 달 11일까지 신청을 받고 있다. 관람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단위로 입장을 구분하고, 각 시간별로 6,500명씩 하루 총 3만9,000명이 입장할 수 있다.

글·사진=허남윤기자 / 편집=이상목기자

 

 

많이 본 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