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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경북 뉴 관광지] <1>영양 자작나무 숲…30년간 숨겼던 자태 가까이 오라고 손짓

최고 20m 자작나무 12만여 그루, 윤기 흐르는 껍질 은처럼 빛나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해 '죽파'(竹坡)라고 불리는 이곳 작은 마을 깊은 산골짜기에는 '설국'(雪國)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자작나무들이 숨어 자라고 있다.
자작나무는 순 우리말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잘 닦은 은처럼 빛난다. 멀리서도 빛이 난다. 가까이서 보면 더욱 장관이다. 껍질은 백짓장처럼 얇고 가늘다. 윤기조차 좌르르 흐른다. 자작나무 숲은 새로운 세상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이곳의 자작나무 숲은 30여년이나 세상에 자기 모습을 숨긴 채 오롯이 하늘 끝 모르게 자라왔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지쳐 시름할 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내 보였다. 시대 최고의 명소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최고 힐링 명소다.

 

 

◆자작나무는 경이로움·감동·환희·순수함

자작나무에 대한 기억들이 아련하다. 흔히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어쩌다 고민하고 결심해서 출발했던 시베리아 여행길에서 만나게 되는 자작나무는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다.

기자에게도 아주 오래 전 자작나무 숲에 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끝 모를 긴 여정. 자작나무 숲 행렬도 끝 모르게 이어졌다. 새하얗게 눈 덮인 설국 땅에서 하늘 찌를 듯 곧게 버티고 선 자작나무는 경이로움이었다.

 

여행길에서 체험한 자작나무 숲 산책은 색다른 감동과 환희였다. 숲에 들어서면 열차 곁을 스쳤던 자작나무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숲 전체가 새하얀 눈밭인 듯했다. 문득 아득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에 박힌 점점이 검은 눈동자들이 태초의 신비인양 이방인을 홀렸다.

중국 동북3성 항일투쟁가들의 만주 독립운동을 취재하고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지났던 이국땅에서도 자작나무의 고고함을 볼 수 있었다.

온갖 나무들 사이에 백옥 같은 자신만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고고함에서 차디찬 만주벌판을 내달리며 독립투쟁에 나섰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열정을 보는 듯 했다.

'내 다시 자작나무에 오르고 싶다/ 검은 줄기를 타고 설백(雪白)의 가지 끝까지/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가 더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거기서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내려오느니/ 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

60여 행에 이르는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자작나무' 마지막 시구절이다. 시인은 청년에 접어들어 그 길을 떠나, 장년이 돼서 다시 그 길에 돌아온다. 결국 시인에게는 자작나무 숲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장소다.

이렇듯 자작나무는 경이로움, 감동, 환희, 순수함이었다. 미국 노 시인에게는 삶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는 장소였다.

영양 자작나무 숲도 우리들에게 그런 장소다. 지친 삶의 활력을 다시 찾으려면 지금 당장 영양 자작나무 숲을 찾자. 아무 준비 없이 지친 마음을 비울 마음만 있으면 된다.

 

 

◆영양 자작나무 숲에서 지친마음 비우자

경이로움의 세상, 영양 자작나무 숲은 30년 넘도록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에 100년을 족히 살았을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들이 호위무사처럼 에워싼 채 누구에게도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가로막히고,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옭아매는 '팬데믹'에 자작나무 새하얀 수피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오라'고 손짓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영양 자작나무숲은 1993년에 조성됐다. 검마산 자락 24ha 규모의 국유림에 조림됐다. 최고 20m가 넘는 자작나무 12만여 그루가 빼곡히 산자락을 뒤덮고 있다. 늘씬늘씬하다.

나무껍질에는 기름기가 많다. 오래 타는 덕분에 옛날 결혼 때 신방을 밝히는 촛불 재료로 사용됐다고 한다. '화촉(樺燭)을 밝히다'의 '樺'는 '자작나무 화' 자다.

러시아에는 '자작나무 껍질로 연애편지를 쓰면 상대방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연인들의 이름을 새긴 껍질에 생채기가 여기저기 드러났다. 숲 입구엔 '나무가 아파요'란 안내 푯말도 걸렸다.

영양 자자나무 숲은 그리 호락호락 자기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다. 수비면 발리리를 지나 오기못으로 가다 좌측으로 난 비탈길을 넘어 죽파리로 가야 한다. 또 영양읍내를 지나 국도를 타고 가다 일월면 칠성리 부근에서 수비 송하리로 올라가는 길로 갈 수도 있다.

죽파리 마을을 다 지나면 차를 세워야 한다. 이때부터 자작나무 숲까지 3.2km는 걸어야 한다. 검마산 자락에서 노니는 온갖 새소리와 길섶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시간마저 치유의 시간이다.

한 여름이라도 숲 속은 청량함이 감돈다. 그렇게 1시간여를 지나면 비로소 눈앞에 순백의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잠시의 피곤함이 일순간 사라지는 듯하다.

입구부터 산을 타고 줄지어 선 자작나무들이 마치 군무를 펼치듯 버티고 서 있다. 나무 숲 사이로 사람들이 오갈 수 있는 오솔길이 열려 있다. 새하얀 수피와 푸른 잎들이 하늘빛을 가로막고 있는 오솔길은 2km나 펼쳐져 있다. 검마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경북도·영양군·산림청, 2023년까지 명소화사업

지금 이곳에는 영양군청, 산림청, 경상북도가 삼위일체가 돼 자작나무 숲길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힐링센터, 체험원, 에코로드(전기차), 임산물 카페, 탐방로, 전망대 등등. 모든 사업이 완료되는 2023년엔 그야말로 영양의 대표 명소가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요즘도 꽤 알려져 주말과 휴일에는 탐방객들이 물려든다. 2~3년만 지나면 엄청난 인파로 북적일 테다. 숲 크기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의 3배다.

최근 트레킹 마니아와 사진작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언택트 관광지로 제격이다. 이곳은 '웰니스 산림관광지', '언택트 여행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영양군은 28억원의 사업비로 숲 힐링센터, 숲 체험원, 에코로드 전기차 운영기반 등 산림휴양지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산림청은 '여행하기 좋은 명품 숲'으로 영양 자작나무숲을 선정하기도 했다.

경북도도 '영양 자작도'(島) 산림관광지 조성 목표로 산림관광 명소화, 산림관광상품 개발자원화, 산림관광 기반구축, 주민역량 강화 등 4개 전략사업에 16개 세부사업안을 제시하는 등 자작나무 숲 명소화에 나섰다.

영양 자작도는 영양이 청정지역으로 오지라는 점과 자작나무가 있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체류하면서 여행지를 즐길 수 있다는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한 명칭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직접 현장을 찾아 자작나무 숲을 경북 최대 산림자원으로 개발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경북도는 해외 언론사 기자 초청 팸투어를 통해 경북 최고의 산림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영양 자작나무 숲에서는 모든 상념과 걱정이 사라진다. 일상에 지치고 지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치유해 줄 자연의 선물이다. 이곳은 청정 자연환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속 장면처럼 오래도록 가슴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