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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살기 위해, 여기 산다

[경인 WIDE] 하수도 역류 순식간 쑥대밭… '최후의 보루' 생활고에 못 떠나
'반지하의 세계'… 경기도 실태 보고

 

현장의 반지하 침수 피해 지역은 모두 주변보다 저지대였다. 수원 장안구 영화동과 안양 만안구 박달1동, 군포 산본1동에선 노후화된 하수구가 제 역할을 못 하자 빗물이 인근 반지하로 곧장 역류했다. 피해는 오롯이 반지하 거주자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저지대'·'하수도 역류' 반지하 침수엔 공통점이 있다

 

9일 자정께 안양 박달1동 문성돈(64·남)씨의 반지하 주택은 모두 세 곳에서 물이 역류했다. 현관문 앞 하수구, 화장실 배수구, 베란다 창문 쪽 하수구에서 물이 불어나 단숨에 무릎까지 찼다.

물건을 챙길 새도 없이 대피가 먼저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 서랍장, 옷장, 신발, 옷, 쌀, 가재도구 등은 다 젖어 있었다. 대부분을 버려야 했다. 냉장고 두 대는 고장이 났다. 장판도 새로 해야만 했다.

문씨는 "20년 전 반지하에 살 때 물이 약간 들어온 적은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 집이) 다른 반지하보다 더 지하라서 피해가 심한 것 같다"며 "이틀간 근처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지상으로 이사 갈 여력이 안 된다. 복구하면 다시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밝혔다.

 

저지대로 빗물 무릎·허리까지 침수

 

같은 날 군포 산본1동 오모(68·여)씨의 반지하 주택도 마찬가지였다. 오씨는 자정 무렵 키우던 반려견이 집 안으로 들어와 대피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오씨는 "강아지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끙끙 소리를 내길래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물은 허리까지 찬 상황이었다. 화들짝 놀라 대충 옷을 걸친 채 강아지를 안고 물살을 가르며 옆 빌라 2층으로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비가 잠잠해지고 돌아왔을 때 집은 쑥대밭이 됐다. 옷, 가구, 냉장고, 세탁기 등 성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오씨는 "이걸 다 다시 사려면 얼마나 필요할지 감당이 안 된다. 생활에 필요한 냉장고랑 세탁기만 사도 지원금은 금방 떨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반지하에 살게 된 이유, "월 10만원으로 살 수 있어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법은 주거 환경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식비를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조금 불편해도 견딜 수 있다는 생각에 반지하를 택했다.

반지하는 500만원 남짓의 적은 보증금, 10만~20만원 수준의 월세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번처럼 폭우가 올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했지만,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 그래픽 참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김모씨는 1년 전 아내가 다쳐 병원에 입원한 이후 혼자 반지하에 살고 있다. 자식들의 연락도 뜸하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다는 이유로 반지하 생활을 고집하고 있다.

"초등학교 안전 지도사로 일하며 한 달 27만원 정도 벌었는데 수급자로 확인된 뒤 일을 못 하고 있어요. 여기 떠나는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니까요. 여러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게 싫어요."

 

폭우 불안해도 지상 월세 1.5~2배↑

 

반지하에도 계급이 있었다. 비좁은 집일수록 좀 더 아낄 수 있었다. 집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조금 더 비쌌고,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집들은 더 저렴했다.

가령 아파트 경비원 김모씨가 사는 집은 방 3개에 화장실도 안에 있는 집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김씨가 사는 집은 방 2개에 3가구가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경비원 김씨의 집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30만원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김씨의 집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이다.

 

반지하는 도시 생활 최후의 보루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지역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반지하와 지상 1층의 월세는 평균 1.5~2배 정도 차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거주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반지하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소득 수준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더군다나 반지하 거주자 중에는 오랜 시간 노동을 하기가 벅찬 노약자나 환자 등이 많았다.

 

노약자·환자 많아 생계 빠듯 하소연
"정부 정책 골고루 혜택 받았으면"

 

수원 영화동에 사는 최모(51·여)씨도 반지하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최씨의 가정에는 당장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이가 없다. 최씨는 건강 악화로 일을 할 수 없고 첫째 자녀는 지적 장애인, 둘째는 학생이다. 이런 탓에 한 달 정부 지원금 175만원에 의지한 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씨는 "지난달 LH 전세임대주택 예산에 맞는 곳을 찾다 보니 반지하로 오게 됐는데 한 달 만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 옷은 곰팡이가 펴서 다 버렸고, 이사 올 때 장만한 가구들도 버려야 하는 지경"이라며 "환기도 안 되고 습기도 많이 차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군포 산본1동 반지하 주택에서 4년째 거주 중인 중국 동포 이경숙(66·여성)씨도 형편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신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비싼 약값을 감당해야만 했고 건강이 나빠져 결근하는 날도 많아졌다.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 8만8천원을 벌어 월세 20만원을 간신히 내는 그에게 신장암 판정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씨는 "한국 국적이 아니어서 차별받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반지하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혜택을 고루 받았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시은·수습 김동한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