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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K-탄생문화 '태실'·(中)] 왜 주목받지 못했나

'죽음의 공간'에 묻힌 태실… 돌덩이처럼 굴러다닌 석물

 

"태실이 뭐죠?" 조선왕실이 중요하게 여긴 장태 문화인 태실은 사실 왕릉이나 종묘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태실에 대한 연구와 조사, 발굴 등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태실이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오늘날 태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관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곳곳의 길지에 자리한 태실(주로 태항아리) 54위를 고양 서삼릉에 모은 것이 불씨가 되었다.

왕실의 안녕과 만세를 기원한 탄생의 문화가 죽음의 공간에 묻혀 그 상징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 과정에서 태실의 원형은 크게 훼손됐고, 제사를 지내며 관리된 왕릉과는 달리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방치됐다.

 

 

'서삼릉'에 모아 상징성 상실
최근에서야 발굴·연구 본격화
원형 잃은 석물, 유휴지 방치

 

이러한 현실은 경기지역의 가봉태실에서도 확연하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헌종의 아버지, 익종의 태실이 남아있다는 포천시 성동리의 한 소공원. 인근 지역의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등록하고 찾아갔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태실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도 눈에 띄지 않아 수차례 같은 곳을 맴돌고 나서야 위치를 파악했다.

호국로와 영평천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원래 익종태실에 있어야 할 석물들이 순서 없이 나열돼 있었다. 제자리를 잃은 26개의 석물은 일제강점기에 해체돼 남아있던 것을 한국전쟁 당시 육군 제5군단에서 보관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1977년 소공원이 조성될 때 이곳으로 이전됐다.

 

 

가평 중종태실 역시 서삼릉으로 강제 이전한 후 방치되다 산 주인이 흩어진 석물을 발견해 인근 초등학교에 보관했고, 1987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하지만 정확한 고증이 이뤄지지 않아 원형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한 상태다.

그에 비해 성종태실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원래 있던 곳에서 강제 이전돼 태실이 가진 의미가 퇴색됐다. 이 외에도 수많은 태실이 도굴되거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일제 거치며 전래 문화 단절
"해방 이후 도굴도 비일비재
개발로 사라지거나 묘 사용"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은 "태실이 위치한 곳이 산의 정상이다 보니 군사진지가 설치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이후 사유지가 되면서 개발 목적으로 사라지거나 묘로 쓰는 등 상당수가 훼손돼 관리되지 않았다"며 "왕릉은 계속해서 제사를 지내는 문화를 통해 잘 보존됐지만, 태실은 전래하는 과정에서 단절이 생겨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어 "과거부터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원형 자체가 상실돼 실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해방 이후에도 도굴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3면([K-탄생문화 '태실'·(中)] '전세계 유일' 가치)

/김성주·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