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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전시리뷰]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김희천·이옥경 '필드 기억'

소리로 그리는 각자 마음속의 풍경

 

시각, 청각, 촉각, 후각…. 우리는 모든 감각을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큰 듯하다. 무엇인가를 잊지 않기 위해 적어놓은 작은 메모조차도 다시 들여다봐야지만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본 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귀로 들은 것만 기억하게 된다면 어떨까. 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홀에서 만날 수 있는 '필드 기억'은 우리의 감각과 기억에 대한 독특한 설정이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이다.

미술가 김희천과 음악가 이옥경이 만든 다채널 사운드 작품인 '필드 기억'은 1인칭 시점에서 주체적으로 구성하는 기억을 뜻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어떠한 감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만히 앉아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뿐이다.

오로지 청각에 집중… 다채널 사운드 작품 구상
들은 것만 기억하는 주인공, 스토리 따라가는 구조

 

 

이 작품은 하나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수면장애가 있는 주인공은 처방받은 수면 진정제를 술과 함께 먹다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그의 뇌에는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데, 본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들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 주인공의 삶은 달라진다.

"녹음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인의 권유에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기억하기 위해 무엇이든 입 밖으로 말을 꺼낸다. 어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아 몽타주를 작성하듯 하나하나 소리내 이야기한다. 

 

 

새소리, 바람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어떤 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어떤 대화는 또렷하게 들린다.

이는 두 가지 레이어로 구성돼 있기 때문인데, 하나는 스튜디오에서 낭독과 효과음으로 만든 '라디오 드라마'로 서사를 끌고 가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이 직접 녹음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상적 소리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자, 타인의 내밀한 감정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이며 공간을 촘촘하게 채워나가는 소리들은 익숙해져 있던 인식의 방식에서 벗어나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비디오 작품 강박 탈피 실험적 방식으로 관객 소통
새소리·바람소리 등 1시간 분량에도 저절로 몰입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도에 있다. 김희천 작가의 경우 그동안의 비디오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어떤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했으며, 첼리스트인 이옥경 작가는 연주가 아닌 여러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의 구조를 짜며 마치 작곡을 하듯 작품을 완성시켰다.

작품은 1시간 가량의 길이이지만, 굳이 이 러닝타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작품의 흐름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몰입하게 된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