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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정전 협정 70주년] 삶을 바꾼 전쟁 3년, 전쟁 같은 삶 70년

'옛 용사' 고통스러운 경험 전해
"노역 탈출… 한겨울에 땅굴 전전"
"의무병으로 백마고지 전투 투입
하루 10명꼴 전사, 동료 직접 화장"
전후 각자 살길 찾아 '또 다른 전장'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한반도의 기나긴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로부터 70년, 전쟁터에서 화양연화를 보낸 참전용사들의 희끗희끗한 머릿발엔 그간 힘겹게 새 삶을 꾸려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2일 평택에서 만난 6·25 참전용사 3명은 전쟁 발발 직후 상황을 생생히 돌이켰다.

 

강원도 평창 출신 곽동희(90)씨는 넓은 농토를 지닌 집안에서 그 당시 중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성적도 좋았던 학생이었다. 전쟁 발발 후 1·4후퇴 무렵 제때 피난하지 못해 지역이 인민군에 점령당했다.

곽씨는 "목에 직접 총구를 겨눌 정도로 위협받고 노역에 시달렸다"며 "결국 일부 가족을 두고 집에서 도망 나와 한겨울에 석 달가량 야산 땅굴을 전전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군이 지역을 탈환한 뒤에야 곽씨는 가족과 자택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때 자진해 입대 의사를 밝혔고, 적군에 체포됐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적 진지에 침투해 장비와 병력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김상돈(88)씨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월남하자 북한에 남은 어머니와 형제들은 자택과 토지를 모두 수용당하고 곤욕을 치르던 중이었다. 그때 전쟁이 발발했고, 미군에 종사하던 작은아버지가 찾아와 야밤 해주항을 통해 연평도로 밀항했다.

김씨 역시 "항만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군대가 힘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를 동기로 직접 파견 나가 서해도서 전선의 경계근무를 수행했다"고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성태경(92)씨는 1·4후퇴 당시 전라도 임실에서 남원, 경상도 함양과 산청까지 걸어서 피란길에 올랐다. 엄동설한에 맨발로 눈밭과 얼음길을 다니느라 동상은 예삿일이었고, 마땅한 잠자리가 없어 화물차량 아래 자리를 깔고 눕기도 했다.

부산까지 도래한 성씨는 의무병으로 징집돼 기차로 철원으로 파견됐다. 이때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된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되기도 했다. 성씨는 "하루 10명꼴로 전사하니 동료들의 시체를 전장에서 직접 화장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치열했던 전쟁이 중단되고 국가는 아슬아슬한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직접 두 손으로 평화를 이룩한 이들에게는 고향과 정착지 등에서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는 또 다른 '전쟁통'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국가에 청춘을 바친 대가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월 수 만원씩 지급되기 시작할 뿐이었다. 특히 산업화와 경제 발전으로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될 무렵, 전국을 전전하던 참전용사들이 모이던 경기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년 1만명 전우들 세상 뜨는데… 국가에 헌신 대가 "턱없이 부족" 

 

국내 6·25 참전유공자 중 20% 이상이 경기도 내에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다른 지역보다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하다.
전역 후 학업을 마치고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가던 곽씨는 1978년 학생 수가 늘어나던 경기도로 넘어와 정착했다. 군산에서 사업하던 성씨와 인천에서 공직 생활을 이어갔던 김씨도, 각각 자동차 부품업과 항만업종에 종사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경기도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많은 참전용사가 돌고 돌아 모인 곳이 바로 경기지역이다. 국가보훈부 통계를 보면 국내 6·25 참전유공자 4만7천996명 중 22.6%(1만880명)가 도내에 거주해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았다. 

 

경기도 22.6% 거주 '전국 최다' 불구
수당 年 40만원 타 지자체보다 낮아

 

이들에게 청년기를 국가에 헌신한 데 대한 대가를 묻자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국가보훈처가 참전유공자들에게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은 올해 기준 월 39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20년 전 월 5만원으로 시작해 매해 1만~2만원 꼴 인상에 그치다 최근에서야 인상 폭을 올리는 추세다.

또 지자체 조례를 통해서도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는데, 도는 연 40만원으로 서울과 인천(연 100만원), 경남(연 120만원) 등 타 광역지자체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시군 단위 조례로 지급하는 수당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 연 100만원 이상 차이 나는 등 예산 여력에 따른 편차가 극심하다. 

특히 6·25 전쟁 참전용사들은 고령으로 건강 악화 문제가 심각해 예우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6·25 참전유공자 수는 2년 전과 비교하면 2만3천448명, 지난해에 비해 1만1천380명 감소해 해마다 1만명 꼴로 줄어드는 추세다.

곽씨도 현재 지팡이를 이용해야 겨우 거동할 수 있었고, 성씨도 보청기 없이는 일상적인 대화도 어려운 상태였다. 김씨는 "병원에서 말도 거동도 못 하고 눈만 끔뻑거리는 동지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지역 따라 연간 100만원 차이 '편차 커'
경기도 "관련예산 대폭 증액 등 검토중"

 

6·25 참전유공자회 관계자는 "평균 나이가 90대에 접어들고 있고, 그중 절반이 거동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건강상태로 파악된다"며 "생존자 수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참전수당이나 의료, 교통복지 등의 시급성이나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경기도는 시군 참전명예수당까지 생각하면 평균적으로 타 지자체와 큰 수준의 차이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지역 편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국가보훈처와 함께 협력할 부분을 찾아 나가는 등 의지를 갖고 해결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