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주의 두번째 도시인 뉘른베르크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수백년의 세월이 묻어나는 성당에서 부터 빛바랜 성벽,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그리고 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테마파크다. 특히 나치 전당 대회가 열렸던 어두운 과거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을 받기도 했지만 전후 50여 년간 옛 모습을 복원한 덕분에 유럽의 고도(古都)가 됐다. 이처럼 성벽을 경계로 과거와 현재가 드라마틱하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뉘른베르크만의 매력이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알브레이트 뒤러의 집(뒤러하우스)과 독일의 역사를 집대성한 국립게르만 박물관은 예술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뉘르베르크 중앙역에서 빠져 나와 시내쪽으로 걸어가자 거대한 형상의 돌탑이 눈에 띈다. 영어로 ‘왕의 문’(King’s Gate)을 의미하는 쾨니히(Koenigstor)이다. 머리가 두 개 달린 독수리 문장이 새겨진 쾨니히는 멀리서 보면 타워이지만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역 앞 횡단보도를 건나 쾨니히를 통과하자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수제품 가게들이 즐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유배문화와 전남 유배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 원교 이광사 등은 당대에 죄인으로 신안 흑산도와 강진, 제주도, 임자도, 신지도 등 유배지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수백 년이 흐른 요즘에는 역경 속에서도 학문·예술세계의 넓이와 폭을 확장한 역사인물로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제주도에 위치한 추사관은 추사 김정희의 유배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인 데다 ‘세한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빼어난 건축미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국보 제180호)의 공자 자한 27장에 나오는 글이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1844년(헌종10년)에 그린 이 작품에는 단출한 집 한채, 말라 비틀어진 소나무 등 마른 나무 세 그루가 그려져 있다. 제주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며 벗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그림으로 한 겨울의 세한을 참고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을 맞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경주 김씨인 추사의
개관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도착한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지만 코로나19 탓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건 미술관 앞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빈 시민들이었다. ‘박물관지구’(MuseumsQuartier·이하 MQ)로 불리는 광장에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기다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사다리 모양의 밑변을 없앤 채 뒤집어 높은 ‘엔지스’(Enzis)로 불리는 의자는 마치 전시장에 설치된 조형물 같았다. #박물관 지구(Museum Quartier) 레오폴트 미술관, 현대미술관(Mumok), 쿤스트할레(Kunsthalle), 어린이박물관(ZOOM kindermuseum), 건축박물관,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21지구(Qaurtier21) 등 10여 개의 미술관이 들어선 MQ는 미술의 도시 빈(영어명 비엔나)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합문화단지다. 현대적인 건축미를 자랑하는 미술관과 바로크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이 곳은 원래 황실 마구간이 있던 터를 리모델링했다. 빈시는 장소가 지닌 상징성을 보존하기 위해 1
프란츠 카프카, 드보르작, 스메타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밀란 쿤데라….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체코 출신의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카프카, 드보르작, 스메타나는 프라하를 무대로 자신들의 열정을 불태워 독보적인 문학과 음악세계를 일궈냈다. 프라하를 동유럽의 보석이자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프란츠 카프카 문학관 체코출신의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r, 1883~1924)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품고 있는 카프카 문학관은 아기자기한 노천카페와 구 시가지의 흔적이 묻어나는 레저타운의 중심부(밀라 스트라나)에 자리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 광장으로 더 알려진 이 곳은 지난 2005년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의 생가를 개조해 문을 열었다. 카프카 문학관에 도착하면 붉은 색 기와지붕을 연상케 하는 2층 건물과 K자 조형물,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개관 전 화재로 인해 정문만 남기고 집 전체가 소실된 아픔이 있었지만 프라하시의 지원으로 고증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건물 입구의 한켠에 설치된 카프카의 초대형 흑백사진과 오줌을 누고 있는 익살스런 두 남성의 형상이 빚어내
이중섭, 김창열, 김영갑, 이왈종…. ‘내로라’ 하는 이들 작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타 지역 출신이지만 제주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평안남도 출신인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은 6·25 한국전쟁 당시 제주로 남하해 1년간 서귀포 칠십리에서 살았고, ‘물방울화가’ 김창열(1929~2021) 역시 전쟁을 피해 1년 6개월 이곳에 머물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1985년 섬에 둥지를 틀었고,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왈종(76) 화백도 1990년 대 초 서귀포에 내려와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비록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제주도에 가면 이들의 예술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과 초가, 제주도립김창열 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덕분이다. 이들 미술관은 차별화된 컬렉션과 프로그램으로 제주의 문화명소이자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제주의 문화지구로 지정된 저지예술인마을(제주시 현경면 저지리)에 가면 현무암으로 마감된 독특한 건축물이 눈에 띈다. 멀리서만 봐도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김창열 미
‘골목길, 관광이 되다’. 요즘 같은 속도의 시대에는 잃어버리고 사는 게 많다. 어릴 적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골목길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골목길은 추억이고 삶을 되돌아 보는 거울과 같다. 그래서 골목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잊고 지낸 우리들의 그 시절을 재발견하는 힐링의 시간이기도 하다.대구의 근대 골목에서부터 부산 감천문화마을, 창원 창동예술촌까지 전국구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골목길로 떠나보자. #창원 창동예술촌 지난 2013년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무학소주, 몽고간장, 시민극장 등 창원(옛 마산)의 3대 부잣집 아들이 등장한다. 극중 미팅 주선자는 자신의 친구들을 여학생들에게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마산 돈은 다 이 세 오빠들이 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응답하라 1994’가 종영된 이후 창동은 전국 각지에서 시민극장 등을 둘러보려는 방문객들로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창동은 과거 ‘경남의 명동’으로 불렸던 마산 최대 상권이자 상징이었다. 특히 창동일대는 조선시대 전국 10곳의 조창(漕倉)중 한 곳이 자리잡았던 250년의 전통이 깃든 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1983년 경남도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