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빠질 지경이다. 온종일 집에 갇혀 있거나, 밖에 나갈 땐 마스크를 끼고 생활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을 달랠 겸 시원한 바다로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상쾌한 해안도로를 달린 뒤에는 바다 너머 석양을 보면서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보자. 목적지는 경남 사천 실안해안도로와 실안낙조다.
광포항서 노을길까지 드라이브
오밀조밀 해안선 타는 재미 솔솔
바다 위 이색 선상카페 ‘씨맨스’
빨간색 지붕 어촌마을도 볼거리
옹기종기 그림 같은 섬·죽방렴 너머
큼지막한 불덩어리가 내려앉는다
실안 해안도로
실안해안도로는 사천에서 삼천포로 이어지는 바닷가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풍경이 아름답고 사진 찍기에도 좋아 평소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내려 사천대로를 따라 달리다 모충교차로에서 빠지면 실안대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광포항~신분령항~실안방파제를 거쳐 실안낙조를 볼 수 있는 노을길까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달리면 된다. 차량 통행량이 적기 때문에 굳이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반대편 차선에선 자동차들이 마치 코로나19를 피해 서둘러 집에 가려는 듯 ‘씽씽’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푸른 바다와 만나는 오밀조밀한 해안선은 ‘바쁜 게 뭐가 있느냐’며 느긋한 표정이다.

모충공원을 조금만 지나면 이색적인 카페가 나온다. ‘선상 카페 씨맨스’가 바로 그곳이다. 바다 위에 작은 카페가 하나 떠 있다. 카페와 육지는 작은 철제 다리로 연결돼 있다.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건물은 아니지만, 바다 위에 떠 있는 게 그 나름대로 낭만이 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이면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카페 애호가들과 블로거, 사진작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쉽게 이곳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
씨맨스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해안가로 내려가 잠시 산책을 한다. 파도에 밀려온 조개껍질이 자갈과 섞여 재미있게 논다. 조개껍질을 여러 개 주워 모은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선물이다. 해초 냄새를 잔뜩 머금은 상큼한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씨맨스처럼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예쁜 바다 경치를 두 눈에 담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들이 실안해안도로를 따라 곳곳에 널려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와중에도 문을 열고 영업하는 곳이 더러 있다. 다른 손님들과 널찍이 떨어져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우울증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듯하다.

씨맨스를 지나자 삼천포마리나가 나타난다. 요트 수십 척이 마리나에 정박해 있다. 차에서 다시 내려 방파제 끝까지 걸어간다.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이 상쾌하고 선선하다. 바람에 밀려 바다로 떨어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방파제 끝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바다는 멀리서 온 나그네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시원한 바람을 연이어 보내준다.
도로 밑으로 빨간색 지붕을 한 어촌 마을이 보인다. 촌스러워 보이면서도 정다운 풍경이다. 그 곁에는 작은 방파제 안에 묶여 있는 배들이 보인다. 마치 따뜻한 집에 돌아와 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 같다.
실안해안도로에는 포도밭이 많다. 지금은 초봄이지만, 8~9월에는 달콤한 포도 향기가 도로를 가득 메운다고 한다. 여름에 이곳에 다시 꼭 돌아올 분명한 이유가 된다.
실안낙조
해가 저물 시간이 다가온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삼천포대교 앞 노을길로 차를 움직인다. 실안낙조는 전국 9대 일몰지 중 하나로 꼽힌다. 남해 바다로 지는 저녁노을이 바다와 부채꼴 모양의 참나무 말뚝으로 만든 죽방렴, 그리고 여러 섬과 어울려 환상적인 일몰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안낙조를 잘 볼 수 있고, 가장 훌륭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삼천포항의 죽방렴이 설치된 곳이다.
사천미술관 앞에서 우회전해 노을길로 접어든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아니면 평일 오후여서인지 삼천포대교 일대 공원은 한산하다. 주차장에는 차량이 드물고,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사천관광마차는 ‘임시 휴업’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느긋하게 긴 휴식에 들어갔다. 삼천포대교 앞으로 케이블카가 달리고 있다. 이용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탓인지 잠시 후 케이블카는 멈춰 서더니 그대로 운행을 마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정지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멀리 죽방렴이 보인다. 뒤편 섬에는 등대가 서 있다. 아직 해가 지려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어차피 바쁘지도 않은 상황이니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잠시 걷기로 한다. 해가 질 무렵이어서인지 바닷바람은 아까보다 약간 차가워져 있다.
‘옹기종기 떠 있는 그림 같은 섬과 죽방렴/그 너머로 내려앉는 큼지막한 불덩어리/하늘이 붉으니 바다도 붉어라/실안의 저녁을 경험하지 않고 낙조를 논하지 말지니’(사천시청 홈페이지).
해는 서서히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주변은 조금씩 발개져 간다. 작은 배 두 척이 통통거리며 석양과 섬 사이 바다를 천천히 가로질러 간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 오늘 고기잡이 성과가 좋았을까? 어부의 즐거운 콧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해는 하얀 구름 사이를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옥황상제가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을 둘러본 뒤 바다 너머에 있는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그리스 신화로 따지면 헬리오스의 마차다. 불그스레한 일몰은 남해 바다를 온통 따뜻한 색으로 물들인다. 그 덕분에 약간 쌀쌀한 느낌의 저녁 바닷바람도 차갑다기보다는 훈훈하게 느껴진다.

휴대폰과 DSLR카메라로 연거푸 노을 사진을 찍어본다. 바로 뒤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 담긴 사진 구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해 본다.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닷가로 내려간다. 파도에 밀려온 해초에서 싫지 않은 바다냄새가 진하게 흘러나온다. 파도는 조금씩 찰랑거리며 작은 자갈들의 등을 간질인다. 파도가 “처~얼썩 처~얼썩” 하면 자갈이 “자~갈 자~갈” 하며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것 같다.
눈으로 석양을, 귀로 파도 소리를, 코로 해초 냄새를 담으며 남해 바다를 공감하는 사이 어느새 해는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완전히 캄캄해지지는 않았지만, 주변에는 어둠이 제법 짙게 내리깔렸다.
코가 시원하게 뚫려 편안해진 마음을 느끼며 자동차 시동을 건다. 고되고 힘든 시기에 삼천포항에서 작지만 큰 위안을 받았다. 이제 돌아가는 길은 따뜻하고 평온할 것 같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