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근한 날씨다. 코로나19만 신경 쓰고 있었더니 어느새 등 뒤에 봄이 성큼 와 있다.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뒤쪽 언덕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드문 휴게소 공원을 잠시 걸어 진달래를 보러 갔다. 분홍색 꽃이 “모든 게 곧 좋아질 거야”라며 방긋 웃고 있는 듯했다. 상쾌해진 기분을 가슴에 담고 경남 함양으로 달려갔다.
신라 시대에 만든 인공 숲
연리목·밤나무·팽나무 등
곳곳에 수많은 고목 자리 잡아
부드러운 흙으로 덮인 산책길
최치원이 놓은 돌다리 ‘천년교’
상쾌하게 걷다 보니 시름 잊어
상림 최치원 공원
큰 바위에 ‘상림 최치원 공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바로 함양 상림공원이다. 맑고 시원한 공기가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넨다. 공원을 가득 채운 수만 그루의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졸~ 졸~ 졸~ 물소리가 들린다. 상림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개울에 물이 흐른다. 기분을 상큼하게 만드는 봄의 환영 인사다.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원을 산책한다. 마치 별미를 먹는 듯한 느낌이다.
나무 두 그루가 비비 꼬여 있다. 분명 다른 나무들인데 한 몸에서 난 것처럼 밀착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진 연리목이다. ‘천년 약속 사랑나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다른 산책객들이 주변에 보이지 않으면 마스크를 벗었다가 멀리 사람이 보이면 다시 착용하기를 반복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모두의 얼굴에는 새봄이 왔다는 즐거움과 일상을 제약하는 코로나19 고통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기쁨이 넘쳐난다.
함양 상림은 신라 시대에 만든 인공 숲이라고 한다. 당시 천령군(현재 함양) 한가운데로 위천강이 흘러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 진성여왕 때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둑을 쌓고 둑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오늘날 상림의 기원이다. 숲 면적은 21만㎡. 밤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20여 종의 나무 2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상림공원 주변은 포장돼 있지만, 안쪽에는 흙길이 조성돼 있다. 곳곳에 수많은 고목이 세월의 흔적을 기반 삼아 자리 잡고 있다. 고목 몸통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가지에는 새잎이 조금씩 돋아난다. 그 사이로 개울이 흘러가고, 곳곳에 크고 작은 정자와 누각이 보인다. 한 나무의 밑동에서는 넝쿨이 봄 냄새를 맡고 가지를 위로 뻗어 올라가고 있다. 이곳저곳에는 작은 보라색 꽃이 피어난다.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개불알풀’이라고 한다. 귀여운 꽃 모양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름이다.

상림공원 반환점에 물레방아와 초가집이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물레방아를 가장 먼저 설치한 곳이 함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8세기 말 중국에서 물레방아를 본 박지원이 함양군 안의 현감으로 부임한 뒤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물레방아 위에 설치된 수로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물레방아는 물흐름에 장단 맞춰 춤추고 있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가벼워지면서 편안해진다.

역사인물공원과 천년교
물레방아에서 방향을 바꿔 주차장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여기서 상림공원 산책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강둑을 따라가는 ‘고운숲길’과 공원 안쪽 길이다. 두 길 모두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걷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날씨가 좋을 땐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도 좋을 듯하다. 맨발바닥에 부딪히는 간질간질한 흙의 느낌. 기분이 꽤 좋다. 공원 안쪽 산책로를 따라 작은 개울이 흐른다. 공원 입구에서 봤고, 물레방아에서 흐르던 개울이다.
따닥 딱딱.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분명 나무를 쪼는 소리다. 위를 올려다보니 새 한 마리가 부리로 나무를 쫀다. 다름 아닌 딱따구리다. 상림공원 숲 자체가 천연기념물 154호라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난다.
산책로에 큰 비석이 서 있다. ‘역사인물공원’ 안내석이다. ‘우함양 좌안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이곳에서 관리로 일했던 사람 중에서 유명한 선비는 한두 명이 아니다. 역사인물공원은 그중 열한 명의 흉상을 모신 곳이다. 최치원, 조승숙, 김종직, 양관, 유호인, 정여창, 노진, 강익, 박지원, 이병헌, 문태서다. 한쪽에 ‘군수 조병갑 선정비’가 서 있다. 고부 군수로 일하다 학정을 일삼는 바람에 동학농민운동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관리다. 그런데 웬 선정비? 그 옆에 안내판이 있다. ‘조병갑은 1886~87년 함양 군수로 재임했다. 탐관오리의 대표적 인물이어서 선정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역사에 교훈을 남긴다는 뜻에서 선정비를 놔두기로 했다.’
상판을 나무로 만든 다리가 보인다. 입구에 ‘천년교’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다. ‘최치원이 홍수를 막으려고 제방을 만들 때 강 건너편에 사는 총각이 함양성 안에 사는 처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목숨 걸고 강을 헤엄쳐 건넜다. 이 사실을 안 최치원이 돌다리를 놓았다. 대신 다른 백성들은 딴 길로 다니게 했다.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오작노디’라고 불렀다.’ 노디는 징검다리를 일컫는 경상도 방언이다.
천년교 건너편에는 어린이공원이, 강에는 친수공간이 조성돼 있다. 어린이공원 뒤에는 언덕이 있는데, 정상에 ‘군민의 종’이 서 있다. 언덕에는 산수유나무가 지천이다. 양지바른 곳이어서 다른 곳보다 꽃소식이 일찍 전해진 모양이다.

상림공원 한가운데에 광장이 나타난다. 운동장처럼 넓다. 한쪽 구석에 함화루가 서 있고, 그 앞에 큰 그네가 있다. 운동장 잔디는 아직 누런색이지만, 이미 분위기는 봄이 제방 건너올 준비를 마쳤음을 느끼게 해준다. 한 아이가 신나는 표정으로 그네를 탄다. 젊은 엄마는 이리저리 오가며 그네를 열심히 밀어준다. 다정한 두 연인이 환하게 웃으며 그네 타는 모녀 뒤로 걸어간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느긋하게 봄기운을 즐기다 보니 벌써 오후가 깊어간다. 한참 늦은 점심은 공원 바로 앞 ‘함양건강100세 음식지구’에서 연잎밥으로 해결했다. 각 고장의 특색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피로를 푼다. 아직 남아 있는 연잎밥 향기는 입안을, 공원에서 들었던 개울물 소리는 귀를, 커피 향기는 코를 맴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