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3년 가까이 책임을 회피하고 무심했던 정부의 태도가 전향된 데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피해 참상을 알린 보도들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70명이 넘는 피해자들과의 국가배상 소송에서 정부는 줄곧 “책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상소 포기 선언(8월6일자 1면 보도)으로 피해에 대한 책임을 공식 인정하게 됐다.
공식 사과와 특별법과 전국 단위의 지원 등 산적한 피해회복 과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6일 법무부에 따르면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피고인 정부와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해 진행 중인 국가배상 소송은 총 42건으로, 1심 21건, 항소심 18건, 상고심 3건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으로 구성된 해당 소송들의 원고는 총 377명이다.

정부는 2022년 12월 제기된 첫 국가배상 소송부터 최근까지 그동안 법원에 일관된 주장을 이어왔다.
선감학원 국가배상 관련 올해 선고된 3개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피고 대한민국은 운영 주체가 대한민국이 아닌 경기도이고, 운영 사무가 경기도의 자치사무에 해당하며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행위가 구체적·개별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대한민국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적시돼 있다.
상소 포기 발표 직전까지 진행된 재판들에서도 정부 측 변호사들은 재판부에 배상책임을 강하게 부인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패소하면 곧바로 법적 싸움을 이어가는 ‘기계적 상소’도 반복해 왔다.
정부는 재판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공식 사과와 지원 등에 대해서도 뒷전이었다.

피해자들은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를 중심으로 행안부 장관의 공식 사과를 2년 넘게 요구해 왔다. 지속된 요청에 지난해 12월 이상민 전 장관이 사과를 추진하려 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로 무산됐다.
지난 2023년 10월에는 유해 발굴 등 구체적 진실규명 활동에 정부가 나서달라고 목소리를 냈지만,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40기의 분묘가 발견돼 집단 암매장 사실이 이미 드러났지만, 9억원 수준의 예산 지원도 외면하며 유해 발굴이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경기도가 떠안고 지난해 진행했다.
앞서 경인일보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진실규명이 결정된 2022년 10월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선감학원, 진실을 묻다’라는 제목의 기획보도로 당시 인권침해의 실태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알렸다. 이후 지난달까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와 기계적 상소 행위에 대해 3년 가까이 100건 이상의 보도를 통해 비판을 이어왔다.

이번 법무부 상소 철회 결정으로 정부가 피해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며 과거 인권침해로 지병이 많아 당장의 의료 및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선감학원 피해자 대리인단 관계자는 “소송을 진행하는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지속된 법적 싸움에 배상액이 얼마큼 나오든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며 “여전히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 줘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번 결정 이후로 적극 나서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