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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남해 3·1운동 재조명 ‘옥중 육필원고’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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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만세 주도한 정몽호 선생
활동상황 등 적은 6매 분량 원고
‘천도교 주도적 관여’ 기록된

기미년 남해 3·1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애국지사가 옥중에서 기록한 육필 원고가 발견돼 당시를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원고는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소장 박성석)가 남해독립운동사 편찬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최근 남해 3·1운동 주역이었던 정몽호 선생의 당시 활동상황과 옥고를 치른 얘기를 직접 써서 남긴 원고를 아들 정창주 박사(90·전 서울대 농과대학장)로부터 전해받았다.

 

 

 

정몽호 선생의 육필원고는 표지 포함 모두 6매 분량이며 ‘기미 3·1운동 사실록’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남해군은 4면 환해의 도서로서 교통이 불편 중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의 자주독립만세는 서울에서 손병희선생외 32인의 독립선언서와 지도를 기미년 2월 20일에 받은 이예모가 3월 2일 밤에 남양교상에서 금음까지 만세를 화창했다”며 참여 인사, 방법, 장소, 날짜 등을 기록해 놓고 있다. 또 삼천포경찰서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한 사실과 복역중의 상황, 식사의 등급, 반찬까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향토사연구소는 정몽호 선생의 육필원고와 함께 남해읍 남산에 3·1만세기념비건립 공동회장 중 한 사람인 정재홍 선생 육필원고도 확보해 새로 쓰는 남해 3·1독립만세 운동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남해 3·1운동은 당시 천도교가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동안 어디에도 기록이 없어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다 이번에 확보된 정재홍 선생 원고에서 밝혀지면서 확인됐다. 천도교가 3·1운동에 주도적인 관여를 했다는 사실은 기미독립만세가 거국적인 봉기로 일어나고 있던 1919년 3월 하순께 천도교 진주교구로부터 남해군도 이에 응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주교구로 부터 제일 먼저 연락을 받은 남양리 이예모 선생이 문항마을에 거주하는 친척 정임춘을 찾아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보여주고, 두 사람은 남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실제 정임춘 선생은 문항리 인근 금음리, 진목리, 노량리와 함께 진양 정씨 집성촌에 거주하는 정씨 일가를 주축으로 4월 2일과 4일 남해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강진태 기자 kangjt@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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