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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병원 치료부터 미용실 방문까지…인터넷 예약 "너∼무 어려워요"

중·장년인들 "예약 못해 긴급 치료 못 받아 억울"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 검사소 100% 예약제 운영… 민간 검사소에 검사자 몰려

 

 

안동에 사는 60대 장모 씨는 최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딱딱한 반찬을 씹다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통증이 계속됐지만 늦은 저녁이라 치과에 가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운 장씨는 다음 날 아침 동네 치과가 문을 열자마자 방문했지만 "예약을 해도 이틀 뒤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장씨의 사정에도 치과 측은 "코로나19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장씨는 딸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변 치과에도 문의를 했지만 이미 예약한 손님들로 꽉 찬 상태였다. 장씨는 결국 안동을 벗어나 영주의 한 치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디지털 기기 확산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하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병원이나 시설 예약 등 일상 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많은 예약 시스템이 사람이 아닌 디지털 기기나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이뤄지면서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예약'이라는 과정 자체를 어려워했다. 대구 수성구의 정연숙(61) 씨는 "스마트폰으로 예약하면 된다고는 하는데 뭘 눌러야 하는지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며 "ARS(자동응답시스템)라고 하는 것도 너무 복잡해 백신 접종 예약도 전화를 통해 겨우 날짜를 잡았다"고 말했다.

 

미용실 등 일부 업종은 디지털 예약이 아니면 아예 이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대구 동구의 한모(70) 씨는 "동네에 새 이발소가 생겨 갔더니 '인터넷으로 먼저 예약하고 오라'고 했다"며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니 나이 들면 머리도 못 깎나 싶어 마음이 심란했다"고 했다.

 

결국 노년층의 예약은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자녀나 손자·손녀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구 수성구의 김창옥(81) 씨는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정도밖에 못하는 데다 보청기를 써야 할 정도로 귀까지 어둡다 보니 ARS로 예약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결국 손자나 손녀에게 병원 예약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역량과 활용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1만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8.6%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기 어려워 하다 보니 디지털 예약 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불신도 생긴다. 대구의 강모현(64) 씨는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주민등록번호나 휴대전화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데 자칫 개인정보 유출로 보이스 피싱 같은데 쓰일까봐 겁날 때도 있다"며 "차라리 전화로 대화하면서 예약하는 게 훨씬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경북 예천에 거주하는 60대 주민은 "60, 70대들은 돋보기를 찾아 쓰고 설명을 읽고 좁은 화면에 '예', '아니오'를 찾아 누르는 것이 버겁다"며 "나이든 사람만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예약의 디지털화로 인한 고령층의 소외를 해결하고자 각 기초자치단체에선 디지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구 수성구는 평생학습센터와 구립도서관 등을 통해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교육을 담당하는 서경미 강사는 "실제로 교육에 참가하는 어르신들이 예약과 같이 실생활에 필요한 스마트폰 사용 방법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 한다"며 "교육의 장이 많이 만들어져야 어르신들이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과 함께 기술과 인력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주은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디지털과 관련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조 인력이 필요하기에 인력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인과 기술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고정현 경북대 박사(문헌정보)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보편적 설계'를 통해 노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과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