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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대기근과 식민지에서 불멸의 도시로, 아일랜드 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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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골상점한 유민·굶주린 개…170년 전 절망 마주한 순간 멍해졌다
더블린 항구 초입 청동군상 끔찍한 기근으로 곳곳 시체
영국 식민지 수탈 고스란히 경제력으로 英 이기며 복수
1997·2011년 사과 받아내

 

 

여행을 가기 전 내가 늘 몇 가지 의례(儀禮)처럼 치르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 빛의 여신 에일린처럼 흰 옷을 입고 새벽 산을 찾는다는 것은 아니고, 저질체력 보강을 위해 최소한 몇 주 전부터라도 놀이터에서 달리기를 한다거나 동네 한 바퀴 걷기라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는 곳에 대한 찾을 수 있는 한 모든 자료를 뒤져 나름의 소책자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여력이 될 때, 특히 일행이 있는 여행일 경우에는 필히 가는 곳에 관한 역사, 정치, 문화, 예술, 산업 등을 전공 교수나 전문가들의 강좌를 기획해서 여행 전 몇 달에 걸쳐 진행을 한다. 더욱더 의미 있는 여행을 위한 준비의 한 맥락인데 호응적이라 이젠 내가 기획한 여행에서는 관례화되어 있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가 가끔 슬픔에 빠질 때가 있는데 더블린 여행을 앞두고 깊이 알게 된 아일랜드의 역사가 그렇다.

 

 

◆ '슬픈 아일랜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쇼, 조너선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셰이머스 히니, 지난 20여 년간 작가콜로퀴엄 특강에서 학계의 권위자들을 모시고 들은 아일랜드 작가들에게서 켈트신화, 애란(愛蘭), 이니스프리, 율리시스, 블룸즈 데이, 행복한 왕자, 감자 대기근, 캐네디가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하라와 맥킨토시라는 성씨의 구원(舊怨), 민족주의, 찰스 파넬, 마이클 콜린스, IRA 등은 일종의 사전지식들이었다. 하지만 강연장에서 들은 아일랜드의 역사와 사회상은 여느 나라에서 다 느끼는 애틋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실제로 더블린항구 초입의 청동군상(靑銅群像)을 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강단과 강호의 차이라는 것이구나. 1990년대 이후 선진국 대열에 입성한 나라답게 최첨단 건물과 깨끗한 도로 거기에 부의 상징인 요트들이 즐비한 항구에 피골이 상접한 유민(流民)들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개가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에 170여 년 전 그들의 절망이 저절로 느껴졌다.

 

이 청동군상은 파리 로댕미술관과 도쿄의 서양미술관 마당에서 본 칼레의 시민들과 닮은 듯하면서 완전히 달랐다. 로완 길레스피의 '기근'이란 제목의 작품인데 나는 거기서 움직일 수가 없어 그냥 멍하니 붙박힌 듯 그 옆에 서 있었다. 책이나 화면으로 본 난중일기와 열하일기,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동란 때의 가여운 소년들과 굶주린 유민들과 난민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세 번에 걸친 기근이 있었는데 가장 치명적인 1847년부터 1852년까지의 두 번째를 '대기근'이라 부른다. 이 청동군상의 배경이 되는 때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에 대한 곡물 수탈은 극심했고, 이에 분개한 아일랜드인들은 수탈 대상인 밀이나 옥수수 대신 감자를 심어 주식으로 삼았는데 감자역병인 마름병이 돌아 전국이 초토화되어 버린 것이었다. 기근은 끔찍했고 거리에는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굶주린 사람들도 살아있는 시체와 다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국 빅토리아왕조의 상원과 하원은 감자대기근으로 인한 구제방안을 끝까지 반대했고 일부 인도주의적 영국 지식인과 의사들이 영국정부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여 약간의 식량을 받아냈지만 턱없이 부족했고 시기도 늦고 말았다. 그때 아일랜드인 백만 명은 아사(餓死), 백만 명은 이민을 택했으나 그들 중 20만 명도 이민 도중에 죽고 말았다. 아일랜드인 25%가 그때 희생되었는데 2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인구수가 회복되지 않았다. 저 피폐한 몰골로 청동군상이 서 있는 자리가 최초로 이민선이 떠난 자리라고 한다.

 

출발하기 전 박지향 교수의 '슬픈 아일랜드'를 참조해 소책자를 만들었는데 그 제목의 의미를 오롯이 느끼기에 충분하다. 헐리우드영화에서나 유럽에서 아일랜드인들이 폄훼되는 듯 하던 인상과 술고래가 많다던 영화나 소설 대목도 떠오른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겹침이 많은데 대구의 이여성(화가 이쾌대의 형)은 이를 단초로 '아일랜드민족운동' '약소민족운동의 전망' 등을 펴내기도 했다.

 

 

◆ Begin Again, 불멸의 도시 더블린!

 

아일랜드는 그러나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이후 수차례에 걸친 강력한 수정주의 역사 논쟁 끝에 '희생자 신화'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식민지 종주국 영국을 경제력으로 이겨낸 국가가 되었다. 물론 IMF구제금융사태 등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다. 그래도 글로벌한 국가가 되어서 150년 전의 그 대기근에 대해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2011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과도 받아냈다. 남의 일 같지 않게 통쾌한 것은 우리가 일제에게 겪은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거랄까.

 

오코넬 거리(O'Connell Street)는 더블린의 가장 유명한 번화가다. 거대한 바늘 첨탑이 서 있는데 트라팔가르해전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전사한 영국의 구국영웅 넬슨의 동상을 파괴하고 세운 것이라고. 원래 새크빌이었던 거리의 이름을 바꾸게 한 19세기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대니얼 오코넬 동상 아래에서 잘 생긴 청년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다시 시작해, 노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OST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노래에서 진정한 삶의 구원을 받았다.

 

 

헨리 8세에 의해 1546년 설립된 트리니티 칼리지는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과대학이다. '만유인력의 법칙' 뉴턴, 시인 바이런, '종의 기원'의 다윈, 철학자 베이컨, 그리고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다. 케임브리지대학 60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 31명이라고 한다. 역시 우리처럼 인재가 자산인 아일랜드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성 패트릭 대성당 앞에는 축제일이 아닌데도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일랜드에 왔으면 하기스에 기네스는 먹어줘야한다며 검은 오크대문에 황금색 하프가 그려진 기네스 브루어리(양조장) 앞을 서성대다가 저녁에 펍에서 마시기로 하고 더블린성으로 향했다.

 

바이킹, 헨리8세, 올리버 크롬웰 등 이름만 들어도 유혈이 낭자할 것 같은 인물들과 떼놓을 수 없는 더블린의 역사는 성 지하의 무너진 돌 성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녁엔 펍에서 브레이 원더러스 FC의 축구를 보며 열광하는 아일랜드 사람들 틈에서 감자와 레어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그들의 승리를 함께 기원했다.

 

아, 더블린으로 오기 전 글래스고에서 페리를 타고 벨파스트에 아주 잠깐 들렀는데, 그곳에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하런드 앤드 울프사의 도크와 펌프하우스는 물론 그를 소재로 한 영화, 박물관, 교육시설, 유흥가 등을 조성한 테마파크가 있었다. 평소 문화해설사가 타이타닉 크기 그대로 바닥에 그려진 각 선실의 위치도를 짚어가며 그 비극을 이야기해 준다고 한다. 도시는 불운과 불행의 역사를 다크 투어로 상품화시켰고 어떻게 보면 일련의 성공을 거둔 듯했다. 멋진 나라다. 아일랜드 파이팅!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