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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新 문화지리지] 에코델타시티엔 염전, 부산신항엔 신석기시대 공동묘지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2. 우리 동네엔 어떤 발굴 유적이…

고분 8기 더 발굴된 연산동고분군 놀라운 토목기술
한글 전파 입증 한글새김 분청사기 등 소중한 조각
아파트와 도로 아래엔 삼국시대 마을·제사 유적
각종 개발에 유적 사라지고 도시 기억은 점차 잃어
기껏 만든 박물관·안내 간판도 방치돼 낡은 유물로

 

그린시티로 이름 바꾼 해운대 신시가지엔 부산 역사를 구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린 좌동·중동 구석기 유적이 있다. 햇살공원을 중심으로 300m 떨어진 두 유적은 한달음에 달려갈 거리지만, 시간적 간극은 5000년을 넘을 만큼 아득하다. 지구의 표면을 조금만 벗겨내면 시간과 공간의 묘한 엇갈림이 목격된다.

 

■역사를 바꾼 최근 10년 발굴 성과

시간은 상대적이다. ‘신문화지리지 시즌 1’에서 발굴 유적을 다룬 이후 최근 10여 년의 변화가 구석기시대 5000년보다 더 크다.

경주에서나 봄 직한 고총고분 10기가 일렬로 배치된 연산동고분군에선 8기가 추가 발굴됐고, 고대 토목 기술의 보고라고 할 축조 기법도 밝혀졌다. 높이 4m 넘는 봉분이 수십t에 달하는 토압을 견디고 1500년 이상 살아남은 데는 삼각형 흙둑, 점토 뭉쳐 쌓기 등 독창적인 토목 기술이 총동원된 덕분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승격했다.

 

 

에코델타시티 공사가 한창인 강서구 명지도 수봉도 마을에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염전이 발굴됐다. 연속된 고랑 형태로 만든 염전을 비롯해 수로, 소금가마 아궁이와 소금창고 건물터까지 염전을 구성하는 주요 시설이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가덕도 천성진성에선 남해안 수군진성 최대 규모의 계단지와 객사, 축성 시기를 증명할 명문 기와들이 조사됐다. 천성진성을 교두보 삼아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 관련 유적이다.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인 가덕도 장항유적에선 신석기시대 인골 48기가 확인됐다. 신석기시대 최대 공동묘지다. 조개팔찌를 팔에 끼고 미완성 피조개를 가슴에 배열한 40대 남녀의 인골에서 남녀 차별이 없던 당대 사회상도 짐작 간다.

 

 

■땅에 묻힌 죽음과 삶의 이중주

그저 먹먹한 죽음의 현장이 있다.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동정거장 공사 현장에서 조사된 동래읍성 해자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사람의 공동묘지가 됐다. 조총에 맞아 구멍이 나고, 칼에 베인 흔적이 역력한 아이와 여성의 두개골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말없이 증명했다.

일본보다 앞선 갑주가 무더기로 나와 임나일본부 논리를 단박에 깬 복천동고분군에선 말머리가리개도 찾았다. 말에게도 투구와 갑옷을 입힌 가야인들은 흙으로 말 모양 뿔잔도 빚었다. 웃음기 밴 한 쌍의 말머리장식뿔잔은 부산서 출토된 유물 중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됐다.

 

 

죽음과 삶의 공간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정관신도시가 들어선 가동유적엔 집터 150동과 고상창고 75동을 포함해 삼국시대 번창했던 마을 유적이 발굴됐다. 온돌과 부엌이 딸린 집터와 건축 부자재, 234mm 나무 신발, 빨랫방망이까지, 소박한 일상이 담긴 유물이 쏟아졌다. 마을 뒷산 무덤에선 신전을 닮은 집 모양 토기가 나왔다. 가동유적 발굴은 국내 유일한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인 정관박물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마을 유적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망미동 부산지방병무청 자리 동래고읍성 우물엔 두레박과 표주박 바가지, 복숭아씨가 들어 있었다. 온천장 금강공원 시민체육센터에선 마을 공동체의 특별한 의례 공간을 구분하는 삼한시대 2줄의 큰 도랑(이중환호)이 부산서 처음 조사됐다. 기장 고촌휴먼시아1단지아파트가 들어선 고촌리 유적은 삼국시대 칠기와 골각기를 만들던 수공업자 공방 마을이었다.

 

 

■‘작지만 큰’ 깨진 조각

가장 오래된 수공업 집단의 존재는 신석기시대 유적 교과서이자 해양수도 부산의 시원인 영도 동삼동패총에서 짐작할 수 있다. 1500점이 넘는 조개팔찌를, 그것도 40배 고배율로 확대해도 다듬은 흔적이 안 보일 정도로 초정밀 작업해 일본까지 수출했던 장인들의 유적이다. 동삼동패총 토기 조각 한 점에서도 역사를 만난다. 가로 12.9cm 세로 8.7cm 사슴선각문토기다. 크로키 하듯 특징만 잡아 사슴 두 마리를 그린 토기편은 한국 회화사의 기원을 새로 쓰게 했다.

 

 

 

신대연코오롱하늘채아파트가 들어선 용당동에선 가로세로 7.1cm×6.4cm 손바닥만 한 점토로 만든 불상이 출토됐다. 부산에선 처음 나온 출토 불상이었다. 신라 천 년 미소인 ‘웃는 기와’처럼 은은한 미소가 인상적인 고려시대 소조불두다. 만덕동사지(기비사)에서 깨진 상태로 발굴된 치미는 남아 있던 부분만 높이 51.5cm 폭 98cm로 동양 최대 규모라는 경주 황룡사지 치미에 맞먹는다.

명례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선 기장 하장안 유적에선 12cm 크기 한글새김 분청사기 조각이 발견됐다. ‘라랴러려로료루…뎌도됴두’ 식으로 마치 장인이 글씨 연습을 한 듯 새겼는데, 16세기 변방인 기장지역까지 반포 반세기 만에 한글이 보급됐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다.

 

 

 

■기억을 잃어 가는 도시

삼국시대 주거지, 고분, 제사유적이 구릉마다 엄격하게 나뉘었던 기장 청강·대라리 유적은 발굴 전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구릉 정상을 둘러싼 6열의 나무울타리와 대형 제사 건물터는 부산울산고속도로 공사에 날아갔다. 기장 터널이 뚫려 있었고, 교각도 세워져 있어 우회할 도리가 없었다.

발굴 현장과 공사 현장은 뒤섞여 있었다. 청동기시대 무덤 18기가 나온 온천2구역은 동래 래미안아이파크아파트 신축엔 눈엣가시였다. 기장읍성 동문 쪽에 터를 잡은 기장초등학교에선 조선시대 곡물창고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확인됐지만, 학습권에 밀려 발굴은 어정쩡하게 마무리했다.

 

 

동래읍성 주변은 신라 고도 경주처럼 파면 유물이 나오는 곳이다. 전기 동래읍성 석축이 확인된 웰스플러스아파트와 부일스톤캐슬아파트는 유적을 보존하면서 설계를 바꿔 공사하는 절충을 택했다. 유적이 확인돼 이전복원으로 결론 난 동래구신청사 건립 부지는 이미 지하 4층까지 땅을 파는 공사가 한창이다. 유구를 그대로 떠서 지하 1층에 옮긴다지만 건물에 맞춰 축이 틀어지고, 사실상 유적 파괴를 허용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기억할 공간을 만들고도 짓고 난 뒤엔 관심 밖인 경우가 허다하다. 발굴 현장에 유적을 재현한 박물관이 들어선 국내 첫 사례로 높이 평가했던 복천박물관은 개관 30년이 다 되도록 리모델링을 못해 다른 의미에서 낡은 유물이 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인골이 무더기로 나온 가덕도 장항유적 자리엔 가덕도 유적 홍보공원이 조성돼 있다. 무릎까지 풀이 자라 접근하기 쉽지 않고, 조리 공간인 돌무지는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기껏 만들고도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하루가 멀다고 달라지는 도시의 풍경에 아파트 아래, 도로 아래, 공단 아래, 기억의 퇴적물이 가뭇없이 잊히고 있다.

 

특별취재팀=이상헌 선임기자 ttong@busan.com

사진=윤민호 yunmino@naver.com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사진제공=부산박물관·부경문물연구원·한국문물연구원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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