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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소설 속 강원도](36)조정래의 ‘누명’

 

한국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조정래는 군대에서 제대한 이듬해인 1970년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소설 ‘누명’ 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다.

 

‘누명’ 은 소설 ‘태백산맥’은 물론 ‘아리랑’과 ‘한강’ 등 역사의식을 담은 긴 호흡의 대하소설이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조정래 문학의 시작을 목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그 배경이 ‘춘천’이라는 점은 놀랍기도, 또 반갑기도 하다. ‘누명’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조정래의 초기작 10편을 모은 소설집 ‘상실의 풍경(1999년 4월 출간)’ 에 실리기도 했다.

 

주인공인 카투사 강태준은 미군부대에서 함께 복무하던 흑인 프랭크가 자신의 사물함에 오줌을 싸고 침대를 엎어버려 엉망으로 만든 상황에 크게 분노한다.

 

태준은 프랭크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맞섰지만 고릴라 같이 몸집이 큰 그 녀석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주먹이 날아들었고 하릴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어 버린 태준은 카투사 동료들 사이에서 깨어난다.

 

동료들이 걱정의 한마디 씩을 보탰지만 정리하자면 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했냐는 것이다. 오로지 절친 서점동만이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뿐이었다. 이튿날 태준은 프랭크와 함께 전날 있었던 일로 중대장 바큰스테테에 호출을 당한다.

 

 

1주일 외출 금지 처분을 받은 태준과 달리 프랭크는 외출 금지는 물론 또다시 1계급 강등을 당한다. 언뜻 정의(?)로는 판단 같았지만 태준은 이미 중대장에게 미군의 명예에 도전한 놈으로 각인된다. 그 날 이후로 의무실에 근무하던 태준을 대하는 중대장의 태도는 싸늘하게 변한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동이 짐짝에 발등을 찍혀 의무실에 실려오는 일이 벌어진다. 태준은 늘 고마운 서점동을 정성껏 돌본다. 더 이상 치료는 필요없다는 의무장교의 말에도 의무실에서 약을 챙겨와 서점동을 치료한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한다. 바로 자신을 주시하던 중대장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막사를 나오던 태준을 잡아 세운 중대장. 그는 태준의 주머니에 있던 치료도구를 꺼내들고 도둑 누명을 씌워 버린다. 며칠후 사령부 징계위원회에 불려나간 태준은 단 5분만에 한국군으로 되돌아가는 국편 조치를 당한다.

 

태준은 중대장과 프랭크의 모습 속에서 피난시절 김주사네 아들 갑수와 갑수네 식모 아들 철이를 떠올렸다, 갑수는 평소 철이를 거지 취급했지만 철이가 누군가에게 당한다 싶으면 한패가 돼 감싸고 돌았다. 마치 중대장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복수한 것 처럼 말이다.

 

조정래를 현대문학에 추천한 오영수 소설가는 추천사에서“속담에 가재는 게편이란 말이 있다. 흑인이라지만 엄연한 미국군인이다. 한국인이 흑인보다 색깔이 덜 검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흑인이 더 가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태준과 서점동이 함께 배속받는 부대가 바로 춘천에 있는 미군부대 C대대이다. 지금은 사라진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가 자꾸 떠올랐지만 실제 그곳을 염두해 두고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소설 속 작은 사건을 통해 정의는 무엇이고, 또 동맹이라 부르고 친구라고 인정할 수 있는 테두리는 어디까지 인지에 대해 작금의 세태 속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조정래는 “(오래전 자신이 쓴)이 작품들이 (미래에도)현존성을 갖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는데 그의 기우가 이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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