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원자력발전 관련 예산 1800여억원을 삭감하면서 경남 주력산업인 원전 업계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전 업계에선 신한울 3·4호기, 해외 수주 사업 관련 일감 등이 들어오면서 탈원전으로 인한 침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지만, 다시 고사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폴란드·체코 등에서 추진 중인 신규 원전 수출뿐 아니라 기존에 계약을 체결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사업,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건설사업 등의 추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여당과 협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삭감한 예산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향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논의 결과에 따라 윤석열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원전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임위에서 감액돼 예결위로 보내진 예산안은 증액 등 변경 시 국회법(제84조 5항)에 따라 해당 상임위 동의를 받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산자위에서 여당의 불참 속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예산 333억원을 포함해 현 정부 국정과제인 원전 생태계 정상화 관련 예산 1813억7300만원을 감액했다. 구체적으로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사업(1000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사업(333억원), 원전 수출 보증사업(250억원), 원자력 생태계 지원사업(112억원), 현장 수요 대응 원전 첨단 제조 기술 개발사업(60억원),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사업(58억원), SMR 제작지원센터 구축사업(1억원) 등이다.
반면, 민주당 중점 사업인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안은 4500억원가량 증액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1620억원),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사업(2302억원),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개발(579억원)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대폭 증액 의결했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예산 6948억원, 에너지 수요관리 핵심기술 개발 예산 187억원 등도 증액했다. 문재인 정부 때 설립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의 사업지원 예산도 127억원 늘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남지역 공약 1호로 ‘차세대 한국형 원전산업 육성’을 제시했다. 특히 차세대 SMR 관련 핵심 기자재 제작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약속했다. SMR은 발전량이 500메가와트(MW)급 이하인 소형 원전이다. 기존 원전의 증기 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소형원자로로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안전성이 높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SMR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5조9000억원에서 2027년 약 13조4000억원, 2040년 약 386조원(3000억달러)으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회 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최형두(창원시 마산합포구) 의원은 21일 ‘긴급호소문’을 내고 민주당의 원전예산 삭감에 대해 “오기와 광기,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고 맹비난했다. 최 의원은 특히 “SMR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추진을 결정했고, 지난해 대선 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공약에 포함한 사업이어서 보복성 예산 삭감”이라며 “이대로 예산결산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국내 원전 산업의 연구·개발은 멈추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당장 내년에 체코 원전 국제 입찰이 있고, 폴란드·영국·루마니아에서도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데 청천벽력 같은 만행”이라며 “에너지 절해고도 대한민국의 살길이 무엇인지, 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대한민국이 원전건설의 길을 택했는지 다시 한번 성찰해달라. 경제성장, 국민행복 모두 에너지 안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21일 도 실국본부장회의에서 “민주당이 원전 생태계 조성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원전 생태계를 두 번이나 죽이는 일”이라며 “심지어 미래 차세대 원전 기술인 SMR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시작한 것인데 민주당이 이 예산을 깎았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지사는 특히 “경남은 원전 산업이 주력 산업이고 SMR 개발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예산을 깎아버리면, 민간 부문에서 SMR 기술개발이 안 되는 것”이라며 경남도에 미치는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