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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성장한 봉준호 감독

영화제 첫해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한국경쟁 부문 초청 상영
제5회 ‘디지털 삼인삼색’ 제작지원작 ‘인플루엔자’ 선보이기도

 

최근 한국영화계에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기쁜 소식을 안겨주었던 봉준호 감독과 전주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 ‘기생충’의 영화 촬영 이전에도 ‘영화의 도시’ 전주를 여러 차례 찾았다.

영화계의 문제적 신인에서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쓴 거장이 되기까지, 봉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의 20년 역사의 첫발을 내딛은 2000년부터 인연을 맺어 다양한 작품을 전주에 풀어놓았다.

봉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성장해왔다. 영화제가 처음 출발한 2000년 장편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그는 영화제와 함께 같은 나이를 먹었다. 그해 전주영화제에 ‘플란다스의 개’를 선보인 후 2004년 ‘디지털 삼인삼색’으로 ‘인플루엔자’를, 2008년 ‘국제 경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2010년 ‘마스터클래스’를 맡으면서 전주영화제와 끈끈한 인연을 맺어온 것.

지난 2000년 열린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봉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상영했다. 당시 ‘지리멸렬’ 등 여러 단편작으로 영화계에 큰 주목을 받았던 봉 감독은 주연배우인 배두나 씨와 함께 전주 무대를 밟았다.

이들은 ‘플란다스의 개’ 상영과 더불어 무대 인사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등 여러 차례 전주 영화 관객들과 소통해왔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인 ‘플란다스의 개’는 일상의 단면을 섬세하게 살려낸 연출력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IMF 이후 한국사회와 한국인이 앓고 있는 신경증적 강박증의 일면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가리키는 우리 시대의 동화”라는 평은 봉 감독의 스타성을 예견한 듯 보인다.

더불어 이 영화는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폐쇄성을 돌파하고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요소를 지워내는 묘사력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봉 감독은 2004년 열린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전주를 찾았다. 영화제 대표 브랜드인 ‘디지털 삼인삼색’ 제작지원작으로 ‘인플루엔자’를 제작한 것이다.

봉 감독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첫 디지털 작업에 임하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는 한 남자가 한강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장면부터 내리막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까지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풍경을 CCTV 카메라로 들여다보듯 무심하게 전달한다.

봉 감독이 연출한 30분 분량의 이 작품은 유 릭와이 감독의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이시이 소고 감독의 ‘경심’과 함께 ‘거울에 비친 마음 : 디지털 삼인삼색2004’이라는 주제로 묶어 완성했다.

특히, 봉 감독의 ‘인플루엔자’는 올해 1월 뉴욕링컨센터에서 진행된 ‘The BONG Show’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2010년에 열린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마스터클래스’ 기자회견에 참석한다. 당시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열린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기자회견에 참석한 봉 감독은 한창 ‘설국열차’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인 만큼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4편의 오프닝과 엔딩을 편집하고 상영한 과정과 그에 대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마스터가 아닌데 마스터클래스를 하려니 쑥스럽다”고 말하던 11년차의 영화감독은 그로부터 10년 후 한국영화계에 수많은 경사를 안겨줬다.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