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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광주 무용계 큰 별, 하늘로 ‘무대’ 옮기다

무용계 대모 엄영자씨 별세
발레 창작·보급…2000여 제자 양성
초등4년때 무용 입문·이화여대 졸업
광주무용연 회장·한국발레협 부회장
한국발레협회 대상·공로상 등 수상
제자들 ‘엄댄스루트’ 결성 뜻 이어

 

한국 무용계를 빛낸 수많은 무용수들을 길러낸 엄영자씨는 ‘광주 무용계의 대모’로 불린다. 평생을 발레 창작과 보급, 제자 양성에 바쳐온 그가 길러낸 제자는 대학교수와 중고교 교사 40명 등 2000여명에 달한다. 특히 제자 사랑이 남달랐던 그녀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땀과 헌신으로 우리에게 풍요의 세상을, 찬란한 빛의 세상을 열어 주었다’는 존경을 받았다.

‘광주 무용계의 큰별’ 엄영자씨가 19일 오전 항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엄 씨는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광주에 왔다. 서석초등학교 4학년 때 무용을 시작했고 광주여중 재학시절 무용계 1세대인 정병호(전 중앙대 교수), 이경자로부터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받았다.

광주여고 2학년 때인 1958년 이화여대콩쿠르에서 ‘빈사의 백조’로 외국무용 1등상을 수상, 전국에 이름을 알린 그녀는 이를 계기로 이화여대 체육과에 입학해 박외선, 임성남(전 국립발레단장) 등으로부터 사사한 후 발레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화여대 재학시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전남지역대회)에 출전, 선을 수상한 배우 윤정희에 이어 미에 선정됐던 일화는 유명하다.

졸업과 함께 모교인 광주여고 무용교사를 시작으로 전남여고, 전남체육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던 그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제자를 키웠고 일요일 연습은 기본, 콩쿠르를 앞둔 방학 때면 운동선수들처럼 합숙훈련에 들어가기도 했다.
 

광주에서 교사로 재직 중 경희대 김백봉, 안재승 교수의 제의를 받아 경희대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1973년 엄영자무용학원의 전신인 라라무용학원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무용학원을 운영했다.

그는 평생을 창작발레 지도자로 활동하며 발레발전에 공헌했다. 무엇보다 그가 키워낸 제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김화숙(원광대 명예교수), 김선희(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박경숙(광주여대 교수), 윤숙자(이화여대 교수), 박준희(조선대 교수), 서차영(전 세종대 교수), 신정희(경성대 명예교수), 김인숙(전남대 교수), 정희자(광주교육대 교수), 문영철·박미정·김남식(한양대 교수) 송정희(경희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엄 씨는 안무자로 참여해 이화여대 무용콩쿠르에서 내리 6년 종합우승하는 기록을 세웠고, 입시 때마다 서울 유명대학에 제자들을 줄줄이 입학시켰다. 뛰어난 발레리나였던 엄 씨는 특히 창작무용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으며 1967년 제 1회 엄영자 무용발표회를 시작으로 10회의 개인발표회와 1500여 편의 창작 발레 안무와 연출을 했다.

또 1963년 한국창작발레 ‘심청전’은 최초의 안무이기도 했지만 작품성에서 큰 인정을 받았고 이후 창작 발레 ‘심청’을 비롯해 ‘초혼’, ‘추억’, ‘춤의 만남’, ‘운명’, ‘빛고을 아다지오’와 1995년 제 1회 광주비엔날레 전야제 축하공연 작품인 ‘불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전국학생연극제, 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경희대 등 각종 무용콩쿨에서 안무상 및 지도상을 수상했다. 또 제5회 호남예술제 ‘백조의 호수’ 특상, 안무상을 수상했고 이후 (사)한국발레협회 공로상, 전라남도 문화예술상, (사)한국발레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2001년은 그의 인생에서 특히 중요한 해로 기억된다. (사)한국발레협회 광주·전남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돼 활동하며 지역발레 활성화에 기여했고 자신의 발레인생 40년을 갈무리하는 기념공연을 가졌다. 무엇보다 전국 200여명의 제자들이 자신의 발레세계를 추구하는 모임 ‘엄댄스루트(UDR)’를 결성한 점은 의미 있었다. 엄 씨는 또 10회의 엄영자무용페스티벌을 개최, 지역발레 활성화에 기여했고 광주교도소와 군부대 위문공연 등을 통해 이웃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현재 국립현대무용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화숙 원광대 명예교수는 엄 씨를 “광주 무용계의 별”이라고 기억했다.

“국내 무용계에서 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신 분이예요. 엄선생님의 제자사랑은 유명하죠.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인간적이셨어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자들이 많이 따르지 않나 싶어요. ‘엄영자 선생님의 춤을 뿌리로 한다’는 의미의 ‘엄댄스루트’를 결성했는데 지난해 스승의 날까지만해도 매년 선생님과 함께 모임을 했었어요. 올해도 당연히 스승의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김기민·김리회 등 세계적인 스타를 길러낸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선생님이랑 이번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입원 몇 주 만에 갑작스레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선생님께서 무용의 뿌리를 내려주시고 줄기를 키워주신 덕에 제가 잘 성장해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엄 씨의 유족으로 아들 이상우씨가 있으며 빈소는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 마련돼있다. 발인은 21일 오전8시30분.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