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 총선이 모두 마무리됐다. 도내 8개 선거구에서는 여덟 명의 새로운 동량(棟梁·기둥이 될 만한 인물) 이 저마다의 포부를 가슴에 새기며 제21대 국회의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투표도 마찬가지다.
1969년 10월17일
`3선 개헌 국민투표' 날,
찬성 65.1% 얻어 통과됐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비극 잉태
한복에 비녀 꽂은 할머니부터
양복 차려입은 신사까지…
옛적에도 투표는 소중한 권리
세계 각국이 이번 총선을 두고 “코로나19 선거 모델”이라고 하거나 “한국의 실험적 투표 방식을 모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기표소로 들어가는 모습들은 생경했지만 투표 열기는 다른 국회의원 선거와 별단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처럼 투표용지에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는 변함이 없지만 풍경들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이후 표를 찍는 기표대의 재료는 대부분 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기표대 안쪽 벽에는 후보자의 기호와 이름, 정당명 등이 쓰인 인쇄물이 부착돼 있었다. 아주 초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후보자의 얼굴사진까지 붙여 놓기도 했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재 기표대는 철재로 바뀌고, 다시 알루미늄과 종이 기표대로 변신한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개방형 기표소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①은 1969년 10월17일 진행된 `3선 개헌(三選改憲) 국민투표' 날의 풍경을 담고 있다. 1962년 이후 7년 만에 치러진 두 번째 국민투표로 △대통령의 3기 연임 허용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의 요건 강화 △국회의원의 각료 기타 직위 겸직 허용 등의 개정 사항을 묻는 투표였다. 어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극을 잉태한 국민투표라고 할 수 있다. 장소는 춘천시 효자동이다. 줄지어 선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한복에 비녀를 꽂은 모습으로 투표장에 나선 할머니부터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멋쟁이 아저씨, 양산으로 햇볕을 가린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무리에서 벗어난 밝은색 양복의 한 신사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짧은 바짓단에 눈길이 쏠린다. 사진을 둘러보며 이 바지 저 바지 살펴보니 아마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가을 햇살이 강한 듯 잔뜩 찡그린 표정들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그중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싱글벙글 신사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날이 금요일인 데다 임시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더 신났을 수도 있다.
투표를 끝내고 하루 잘 쉬고 나서 토요일에 반일근무만 하면 금방 일요일이 되기 때문이다. 행렬의 뒤편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 나왔는지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땅바닥에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고, 아무튼 하나의 단어로 정리할 수 없는 자유로운 모습들이다. 주변에 보이는 중국집 수춘옥과 방앗간 모습 그리고 대서소, 양복·양장점, 낚시점, 이발소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사진②는 3선 개헌 국민투표를 3일 앞두고 진행된 3선 개헌 찬반 유세 모습이다. 마이크 앞에 선 연설자 아래로 군중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는, 현재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다. `사회적 거리 없애기' 현장이다.
3선 개헌은 유권자의 77.1%인 1,160만4,038명이 국민투표에 참여해 찬성 755만3,655표(65.1%), 반대 363만6,369표(31.4%)로 통과된다.
김남덕·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