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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文香이 흐르는 문학관을 찾아서 <10> 장흥 천관산문학관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을 아우른 ‘文林의 터전’
자연적·문화적 공간 조화
2008년 문학관·문학공원 건립
이청준·한승원·송기숙·이승우 등
장흥 출신 문인들 자료 전시
고전 백광홍·위백규 문학도 눈길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몰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이대흠 시인의 ‘천관’(天冠)이라는 시다. 이 작품에는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이 깃들어 있다. 장흥 출신의 시인에게는 서울, 광주 등지를 떠돌다 고향에 정착한 마음이 남달랐을 것이다. ‘천관’(天冠)은 장흥과 동일의 의미를 표상하는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장흥은 산자수명의 자연적 공간과 문림이라는 문학적 공간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문학의 고장 장흥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거나 새롭지 않아서 이제는 오히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한강 등 한국 현대문학사에 내로라하는 작가의 고향이 바로 장흥이다. 그뿐인가 기행가사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쓴 백광홍, 호남실학파의 대가 위백규의 탯자리도 바로 장흥이다. 사람들은 산자수명의 풍광이 오늘날 문림(文林)의 터전이 됐다고 본다.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이 조화를 이룬 고장이 또한 장흥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빛나는 작가 외에도 위선환, 김영남, 이대흠 시인의 고향도 장흥이다.

장흥은 자연 자원도 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영화 서편제, 축제, 천년학을 태동케 한 촬영지와 이청준 생가, 한승원 토굴도 문화 자원 측면에서 소중한 인프라다. 외지에서 온 이들은 문림 장흥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와 같은 공간을 찾아 문향의 향기에 젖는다.
 

장흥에 가는 날,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었다. 봄날씨란 변죽이 죽 끓듯 하는 젊은 여인네의 심사와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미세먼지가 몰려왔나 보다.

희미한 햇볕이 미세먼지 사이로 투과된다. 마치 프리즘 사이로 무지개가 비치는 것도 같다. 이때의 무지개는 경계가 거의 의미가 있는 흐릿한 빛의 무리다.

아스팔트 포장길이지만 천관산문학관으로 향하는 길은 남도길, 고향길, 황톳길의 서정이 녹아 있다. 콘크리트 도로이지만 주위의 풍광이 여전한 남도의 산수화다. 눈이 닿으면 닿는 대로 손길이 스치면 스치는 대로 눈과 가슴에 인화해두고 싶은 경관은 문림의 태토라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달려 차는 천관산 자락으로 이어진 연대봉 아래 아래에 당도한다. 멀찍이 오똑하니 산자락 인근에 박힌 건물이 문학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천관산은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하늘의 면류관이라는 뜻답게 산세와 정상의 기봉이 펼쳐내는 아우라는 자못 유창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이곳에는 천관산문학관과 천관산문학공원이 있다. 문림장흥(文林長興)의 역사를 살뜰히 담아내고 지지하는, 가장 장흥다운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2008년 8월에 건립된 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전시실과 세미나실 그리고 창작실을 갖추고 있다. 일층에는 북카페와 아울러 장흥 문사들을 소개하는 공간이 꾸며져 있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한강 작가의 사진과 이들의 작품 그리고 문학에 얽힌 이야기들이 벽면에 수놓아져 있다.

각각의 작가 사진들은 마치 살아서 그곳에 실재하는 느낌을 준다. 평생 글을 써서 살아온 이들의 문리가 깃든 표정은 사람의 인상은 만들어진다는 고전적인 전제를 생각나게 한다. 문학에 대한 열망, 고향 이야기를 작품에 구현해 그것을 보편화했던 이들의 고투가 절로 전해온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새롭게 구성된 것 중 하나가 작가 한강의 코너다. 그에게 영예의 맨부커상을 안긴 ‘채식주의자’와 광주의 아픔과 역사적 상흔을 아름답게 승화하고 고발했던 ‘소년이 온다’의 작품도 소개돼 있다.

한강의 부친이자 한국문학의 대선배인 한승원의 코너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한국문학의 거목’, ‘작가 한강의 아버지’라는 상찬은 단순한 칭송을 넘어 핍진한 작가 인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전자가 놀라운 생산력과 특유의 성실성을 상정한다면 후자는 부전여전으로 대변되는 문학명문가를 의미한다.

일층 작가의 방을 나오면 옆 전시실에는 장흥의 풍광과 음식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산세부터 입안에 군침을 자극하는 장흥 삼합에 이르기까지 오미와 오감을 전해오는 사진들로 빼곡하다.

 

 

문학관을 나와 문학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줄줄이 늘어선 돌탑으로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일이 돌을 쌓았을 마음 가난한 이들의 염원과 그 돌들이 사이사이 맞물려 조형을 이룬 결실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저만치 봉수대 만한 아니 그것을 넘어서는 커다란 조형물이 우뚝 솟아 있는데 하나하나 민초들의 웅숭깊은 속마음처럼 느껴져 다사롭기 그지없다.

천관문학관에서 가까운 회진면에는 미백(美白) 이청준(1939~2008) 생가가 있다. 한국 문학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청준을 모르지 않을 터다. 남도 정서를 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렸던 작가다. 대표작 ‘눈길’, ‘선학동 나그네’, ‘천년학’을 읽었을 때의 가슴 떨림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자전적 소설 ‘눈길’을 읽다 코끝이 찡해지던 기억은 여전히 새롭다. 어머니는 아들을 읍내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눈길을 밟으며 돌아온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잘 살거라.”

장흥에서 듣는 이 독백은 모든 어머니들의 목소리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모든 아들은 어머니를 떠나 언젠가는 돌아오는 탕자와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장흥 천관산문학관에서 눈길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본향을 본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