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전북일보) 백제역사의 숨결을 따라가다 (중) 익산 백제유적의 차별성

미륵사지·왕궁리 유적, 공주·부여 유적지와 남다른 크기
온전한 왕궁터, 공주·부여에서 볼 수 없어 가장 큰 장점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 스토리 등 또 다른 강점 보여

 

 

700년 역사의 백제. 이 중 익산의 백제유적은 공주·부여와 다른점과 강점은 무엇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백제세계문화유산센터가 진행한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에 참가한 기자들은 부여·공주에는 없는 왕궁터의 규모에 일단 놀랐다. 또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로 잘 알려진 서동 설화는 익산의 백제역사를 풍요롭게 한다.



△부여공주에선 볼 수 없는 온전한 왕궁터

익산의 백제유적지는 오로지 단 한명의 왕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무왕(재위 600~641)이다. 강력한 왕권을 꿈꾸던 무왕은 익산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왕궁면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후기 궁궐의 구조와 기능, 축조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익산 용화산 남측 끝자락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궁궐을 둘러쌌던 직사각형 담장은 동서 약 230m, 남북 약 495m로 총 길이 1454m에 달한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담장은 잔존 부분의 최고 높이 1.2m, 폭 3m 내외다. 전반부에 대형건물, 후반부에 후원·공방·대형 화장실 등이, 전반부와 후반부 경계에 정원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 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토성터 등이 남아 있어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은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일본 교토의 청련원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의 필사본이다. <관세음응험기>는 “백제30대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하여 제석사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궁리유적을 중심으로 한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 자료다.

후백제의 왕궁터, 마한의 궁성터라고 보기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 및 토기 등 유물이 백제 무왕시기의 유물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또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석탑은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탑이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문양과 양식이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목적이 분명하고, 온전히 왕궁의 터가 존재, 백제후기의 왕궁 건축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왕궁터는 현재 익산이 유일하다. 부여와 공주 등에서는 일부 왕궁터 추정장소가 있지만 이토록 온전히 남아있는 왕궁터는 없다. 익산이 익산백제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 같은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배석희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장은 “같은 백제역사유적지구라도 익산은 왕궁의 크기, 처음 발굴조사 때부터 그 목적이 분명한 곳은 왕궁리 유적뿐”이라며 “왕궁리 유적은 백제문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무왕의 본래 이름인 ‘장’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고 고운 것이 짝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로 넘어가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는데, 이 노래가 신라에 궁중에 이르자,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내쫓았고, 선화공주는 서동과 결혼했다.”는 내용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서동요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익산백제가 다른 백제문화권과 다른 또다른 강점이다. 부여·공주가 부러워하고 탐을 내는 이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아직 안타깝게도 유물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이 설화의 배경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 값진 유산이다.

익산시는 이러한 서동을 바탕으로 현재 서동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및 축제를 이어나가고 있다.

최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