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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농촌 재산목록 1호였던 '소'…산업화에 밀려 먹거리 신세로

1970년대 소 장수·가축품평회

 

인류사에서 '소'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생명을 연장시키는 농산물은 '소'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힘이 세고 순한 동물인 소는 철제 농기구와 만나 농업생산물을 비약적으로 늘려 문명을 일궜다. 농사일 중에 가장 큰 힘이 들어가는 것은 땅을 가는 일인데 쇠 보습을 쟁기에 달고 소가 끄는 '우경(牛耕)농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기록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우경은 신라 지증왕 3년(502년)에 등장하지만 실제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마리 대신 두 마리로 밭 가는 '겨리쟁기' 땅 척박한 강원 문화의 상징
45년 전 한우 고장 횡성서 열린 '가축품평회' 당시 좋은 볼거리 중 하나
신용·근면으로 하던 소 장사…1980년대 가격 급락하며 서서히 막 내려


한 마리 소로 논밭을 가는 것은 '호리쟁기'라 했고, 두 마리 소를 이용하는 것은 '겨리'라 부른다. 겨리 쟁기를 이용하는 것은 강원도부터 이북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땅이 척박해 한 마리로는 밭을 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겨리쟁기는 강원도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5년 9월 어느 날 한우의 고장 횡성에서 제7회 강원도 가축품평회가 열렸다. 가축품평회는 체형이 우수한 가축을 선발해 시상함으로써 농가의 가축사육 의욕을 높이고 가축의 질을 개량하기 위한 사업으로, 전국적으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이름으로 한우품평회를 개최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회다.

사진에는 소의 등에 품평회에서 받은 순위를 적은 천이 씌워져 있고 주변에 많은 사람이 물끄러미 소를 지켜보고 있다. 이렇다 할 볼거리가 많지 않던 1970년대에는 가축품평회도 좋은 볼거리 중 하나였다. 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듯 소와 함께 자리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최근 가축품평회는 강원축산경진대회로 치러지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 물결은 농촌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소를 이용한 농사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농촌에서 소는 재산목록 1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일을 경운기에게 빼앗긴 소는 서울 사람들의 식탁으로 올라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농촌에서 가장 큰 재산 가치를 지닌 소는 거래에도 큰 이득을 챙기는 품목이다. 당연히 소 장사는 당시 큰 밑천 없이 신용과 근면으로 하는 직종이었다. 1970년대 당시 소 한 마리 가격이 암소 2만원, 황소 2만5,000원 정도에 거래됐다. 이른 아침부터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흥정한 어미 소 한 마리를 팔고 나면 생기는 이득은 쌀 한 가마니 정도였다. 여윈 소는 여물을 며칠 먹여 살을 찌운 뒤 팔았다.

소를 살 때도 노하우가 있다. 2인 1조가 한 팀이다. 아침 새벽 한 사람이 먼저 마을을 돌며 가격을 흥정한다. 반나절 지난 후 또 다른 사람은 그보다 조금 높은 가격을 불러 인심 쓰는 척 행동한다. 소 주인은 십중팔구 나중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려 거래를 트게 된다. 한 겨울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다니면 80마리 정도를 거래했다. 농촌에 불어온 산업화 여파는 농사꾼이 소 장사로 전업하게 만들기도 했다.

1970년대는 농사일을 도맡아 온 소가 입맛을 돋우는 식재료로 넘어가던 시기다. 1980년 들어 소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소 장사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된다.

1976년 3월19일 금요일, 춘천의 외곽지역에 우시장이 들어섰다. 소를 끌고 온 농부들과 소 장사치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 우시장은 한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꿈이 서려 있다.

또 다른 사진은 1976년 9월28일 춘천의 한 인근에서 소 두 마리가 밭을 갈고 있다. 가을배추 파종을 앞두고 풍년을 기원하며 거친 밭을 갈아엎고 있다. 소 주변엔 다섯 사람이 있지만 일을 하는 것은 두 마리 소와 몰이꾼뿐이다. 강원도 전역에서 행해졌던 겨리쟁기질은 2000년 초까지 이어지다 지금은 축제현장에 등장하는 공연으로 남아 있다.

김남덕·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