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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민주화 운동 주역 부산, 남북 평화·협력 교량 돼야 ”

 

지난달 29~30일 부산과 창원에서 ‘부마민주항쟁 이후 지역 민주화 운동과 민주정치의 과제’란 주제로 열린 부마민주항쟁 41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한국 민주화에서 차지하는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기조 강연과 주제 발표 8건이 있었고 총 24명이 참여해 활발한 주장과 토론을 펼쳤다.

 

부마민주항쟁 41주년 학술대회

“부마항쟁 후 민주화 세력 성장

부산·경남, 6월 민주항쟁 핵심”

87년 이후 노동·여성 운동 팽창

3당 합당으로 보수화 아이러니

 

부마민주항쟁은 1960년 4월 이후 19년 만에 만들어진 현대사의 변곡점이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4·19 이후 최초로 대중이 참여한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지주형 경남대 교수). 그런데 우리 민주화 운동에서 마산과 부산은 역사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1960년에는 마산의 봉기에 부산이 응답했고, 1979년에는 부산의 봉기에 마산이 응답했다는 것이다(김상봉 전남대 교수).

 

부마민주항쟁으로 유신 체제가 붕괴했으나, 한국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1987년을 기다려야 했다. “부산과 경남은 한국 민주화를 성취한 1987년 민주화 운동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 기조 강연에 나선 정해구 전 성공회대 교수의 명쾌한 주장이었다. 1987년 부산은 6월 민주항쟁의 예열 단계로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2~3월 추도와 항의 집회에서 이미 큰 역할을 했다.

 

이어 1987년 20일간의 6월 민주항쟁에서 항쟁 동력의 지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최대 고비가 16~17일이었는데 이때 부산 경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산에선 가톨릭센터 농성과 오후 10시 이후 3만 명 시위대 운집으로 이어졌고, 경남에선 남해고속도 점거에 이어 마산발 진주행 열차를 멈춰 세웠다. 부산 경남의 16~17일 항쟁은 이윽고 전국 150만 명이 참여한 6·18 대회, 130만 명이 참여한 6·26 대회로 이어져 6·29 선언을 끌어냈다.

 

정해구 전 교수는 “이렇게 6월 민주항쟁에서 부산이 핵심 역할을 한 것은 부마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 세력이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79년 부마항쟁의 역사적 경험 축적으로 1987년 이후 부산 경남의 노동운동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이광수 부산외대 교수, 주재석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조원). 민주화 물결 속에서 부산 경남의 여성운동도 형성 팽창했다는 것이다(이송희 전 신라대 교수, 이경옥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투성이다. 민주항쟁의 부산 경남이 보수 정치의 보루가 됐다는 거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영삼 김대중 양김 분열, 그리고 결정적으로 1990년 3당 합당의 와중에서 부산 경남 시민들은 김영삼을 따라서 보수적 정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영남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 세력의 강화에 기여한 일등 공신은 김영삼이었다(정해구). 부산 경남(PK) 지역주의는 지역 맹주 정당을 만들었으며,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토착 권력을 구조화 체계화함으로써 혈연 학연 지연을 통해 맺어진 정실주의적 사회 관계망을 만들어 지역 사회 각 부문이 퇴행을 거듭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차재권 부경대 교수).

 

그 속에서 부마민주항쟁을 굳이 크게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김영삼과 PK 주류 정치 세력에 의해 그 정신은 계승되지 않았던 거다(지주형). 그런 가운데 지방 차별과 지역 불균형은 심화하면서 PK 경제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신공항 문제 하나도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행히 촛불혁명 이후인 2019년 부마민주항쟁은 40년 만에 재평가되면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다시 전면적으로 얘기되기 시작했다.

 

정해구 전 교수는 “근래 영남지역주의 영향력은 계속 약화하고 있다”며 “그것은 민주화 이후 세대가 투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20~30년 후면 남북통일(연합) 시대가 열리고 유라시아 시대를 맞을 것”이라며 “부산은 남북이 평화를 구축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해 서로 교통할 때, 태평양 해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은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한국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부산 경남 울산의 당찬 포부가 돼야 한다는 거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