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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병풍암 석불사·만덕사지… 만덕동 역사 고스란히 아로새긴 신성한 두 사찰

[우리 동네 즐기기] 병풍암 석불사·만덕사지

 

부산 북구 만덕동에는 깊은 인상을 주는 불교 사찰이 두 곳 있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으로 유명한 석불사와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만덕사지다. 만덕동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두 절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매우 다르다. 그래도 맑은 공기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만추의 절경이라는 점만은 똑같다.

 

거대한 바위 옆 석불사 ‘젊은 절’

병풍암에 새긴 29좌 석불 압권

만덕동 이름 낳은 고려 만덕사지

당간지주로 대규모 사찰 추정

맑은 공기·보기 드문 만추 절경

 

 

■병풍암 석불사

 

장난꾸러기 바람은 가만히 생각에 잠긴 대나무를 괜시리 건드린다. 가지 끝에 힘들게 매달려 있는 나뭇잎을 기어코 떨어뜨린다. 바람은 달아나면서 고소한 늦가을 향기를 꽁무니에서 흘리고 다닌다. 청정한 만덕동 공기의 냄새 같기도 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고 달아오른 깨끗한 흙내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산 북구 만덕동 만덕고개길 병풍암 석불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장난꾸러기 바람과 쉬지 않고 지저귀는 산새 덕분에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다. 푸근한 가을 햇살에 졸고 있는 대나무 숲을 살금살금 지나고, 다양한 모양의 바위를 둘러보는 사이 가파른 절벽에 턱 박힌 것 같은 석불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불사는 병풍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바위 옆에 자리 잡은 절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지었으니 아직 채 100년도 되지 않는 ‘젊은 절’이자 작은 사찰이다. 대웅전도 작고, 삼성각은 더 작다. 게다가 각 가람의 모양은 매우 특이하다. 목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석재로만 지었다.

 

석불사의 하이라이트는 대웅전과 삼성각 사이를 지나면 등장하는 병풍암 석불이다. 절을 창건한 주지스님이 거대한 바위에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한다. 정면에 선 십일면관음보살 입상을 필두로 미륵존불 좌상, 약사여래불상과 사천왕상, 비로자나불상, 팔나한과 석가모니불상 등 모두 29좌나 된다.

 

석불은 산 아래는 물론 절 마당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좁은 병풍암 틈에서 신성하고 경건하고 조용히 지내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태양은 한시도 쉬지 않고 따스한 빛을 쏟아붓는다. 한쪽 바위에는 밝은 빛이, 반대편 바위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선악이 양쪽으로 나뉘어 병풍암을 찾아온 중생의 마음을 시험하려는 모양이다.

 

대웅전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산과 때로는 푸르고 때로는 다양한 색으로 물든 숲이 보인다. 속세의 흔적은 한쪽 모퉁이에 아주 작게 나타날 뿐이다. 절 아래에 사는 중생은 이 산꼭대기에 수많은 부처가 편안하게 참선과 풍요로운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는 걸 알기는 할까.

 

■만덕사지

 

병풍암 석불사에서 만덕고개길을 타고 내려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동래구 온천동, 오른쪽으로 가면 만덕동이다. 만덕동쪽 고갯길 중간쯤에는 제법 큰 규모의 카페가 있다. 인근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만덕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산과 숲만 우거진 석불사에서 보던 풍경과는 다른 도시의 모습이다.

 

여기서 구만덕로 방향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만덕사지가 나타난다. 만덕동이라는 지역 이름이 태어나게 한 천년 사찰이다. 만덕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걸로 추정된다. 범어사 대웅전 4배 규모의 금당(법당)지는 물론 경주 황룡사지와 맞먹는 대형 장식기와인 치미가 나온 것으로 볼 때 당시에는 대규모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의 규모를 알려주는 증거는 더 있다. 만덕사지에서 구만덕로를 건너 170m 지점에 당간지주가 서 있다. 불전이나 불당 앞에 세우는 불화 깃발을 ‘당’이라고 부른다. 당을 매다는 장대를 ‘당간’이라고 한다. 당간지주는 당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두 개의 받침 기둥이다.

 

당간지주는 신성한 사찰이 바로 뒤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조물이다. 만덕사지에서 꽤 떨어진 곳에 당간지주가 있었다는 것은 그 앞까지 만덕사 영역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사실이다.

 

 

당간지주는 각종 공장과 주택으로 어수선하게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당간지주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담장 안으로 들어가자 기대하지 않았던 신성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걸 느낀다.

 

당간지주 앞에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노목이 서 있다. 노목을 자세히 살펴보니 방향과 햇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네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북쪽에는 새파란 이끼가 나무를 뒤덮고 있고 반대편에는 이끼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옆쪽에는 말라죽은 이끼가 마치 검버섯처럼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나무 껍질이 벗겨진 채 속이 밖으로 훤히 드러나 있다. 이것은 오랜 세월의 흔적인 것일까.

 

만덕사지에는 작은 암자 규모의 가람 여러 채가 지어져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큰 은행나무가 제법 많다. 늦가을을 맞아 절 마당에는 떨어진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래서 마당은 온통 노란 황금색으로 짙게 물들어 있다. 한가운데에 나지막한 탑 두 기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서 있다.

 

만덕사지 마당에서 만덕대로 건너편 백양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먼 옛날 스님들이 만덕사에서 수양을 할 때에는 병풍암 석불사처럼 온통 산 너머 산과 우거진 숲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덕사지 마당 한쪽의 푹신한 그네의자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느긋하게 사방을 둘러본다. 사찰 오른쪽 아래 구만덕로에는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만덕사지는 그곳에서 불과 30~40m 정도 벗어난 곳이지만 마치 심산유곡에 자리 잡은 것처럼 차분함과 안온함이 흘러넘친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상상의 그림을 그려본다. 1000년 전 만덕사는 과연 어떤 절이었을까.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