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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오래된 미래’ 원도심, 다양성 채워 ‘진행형 미래’로

[부산 새 문화벨트가 뜬다] 중 RE-플레이스 ‘중구’

 

 

부산 중구는 영도나 기장처럼 겉으로 변화가 확 드러나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변화는 존재한다. 개항의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부산의 문화예술 중심 역할을 했던 중구의 변화를 ‘다시, 재(再)’를 뜻하는 접두사 ‘RE’를 통해 풀어봤다. 원도심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되살리고, 신구가 조화를 이뤄며 새로운 문화지형을 만들어가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서점·인문학 공간 들어선 골목

전시·공연장·극장 등 새로 가세

책방골목·영화의 거리도 재부상

작가·주민 참여 커뮤니티 ‘속속’

“북항의 문화 배후기지 가능성”

 

 

■다시 모이는 예술가

 

“원도심은 부산 미술판의 메카이다.” 오픈스페이스 배 서상호 대표는 ‘중앙동 진출’의 꿈을 2019년 1월에 이뤘다. 기장군 배 밭에서 시작한 비영리 공간인 오픈스페이스 배는 정확히 말하면 동광동 인쇄골목에 들어섰다. 서 대표는 “나도 중앙동에서 시작했고, 여기에 오면 작가들이 많이 모여있다”며 “언젠가는 중앙동이 다시 조명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오픈스페이스 배에서는 중앙동에서 활동 중인 ‘이웃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매년 한 차례씩 원도심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청로 126번길 입구에는 공연장 BOF아트홀이 생겨났다. 부산오페라연합회 윤장미 대표는 “쇠퇴하는 원도심에서 문화적 움직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지난해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장병혁 상임예술감독 등 3040 음악인들이 손을 잡고 만든 하우스콘서트홀이다. 윤 대표는 “부산 음악인을 무대에 세우고 신진예술가를 발굴하자는 취지”라며 “코로나로 오픈식은 못했지만 5~6개의 공연을 올리고, 지역 음악단체 무료대관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술가 집결지’ 중구의 역사는 피란수도 부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 온 전국의 예술가들은 광복동 다방에 모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문학을 논하고, 전시를 하고, 공연을 했다. 광복동과 남포동을 아우른 ‘광포동’의 영화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1998년 부산시청이 이전하면서 원도심은 빠른 속도로 쇠퇴했다. 중구에 예술가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이다.

 

또따또가를 통해 중앙동과 동광동 일대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원도심 임대료가 결코 싼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작가들이 작업실을 구할 때 우선 중앙동부터 돌아본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해도 박경효 화가, 권하형 사진작가 등이 중앙동에 새로 작업실을 구해 입주했다. 박경효 작가는 감만동 등을 거쳐 중앙동으로 돌아온 경우이고, 권하형 작가는 또따또가 작가의 소개를 받고 들어왔다.

 

서울과 창원에서 10년 간 혼자 작업을 해 온 권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업실에서 주차장까지 300m를 가는데 세 걸음 가다 사진을 찍고, 세 걸음 가다 사진을 찍을 만큼 원도심 특유의 풍경과 분위기도 매력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되살리는 문화 중심

 

‘부산 문화의 중심’ 기능을 되살리는 움직임은 영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중구는 한국 최초의 순수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시작된 곳이며, 부산국제영화제의 태동지다. 중앙동에서 10년 가까이 관객 문화 운동을 펼쳐온 모퉁이극장이 신창동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로 둥지를 옮겼다.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는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공간으로 지난해 1월 개관했다.

 

모퉁이극장은 4월부터 3층의 극장 운영을 맡았다. 해운대에 있던 부산독립영화협회도 4층 사무실에 입주했다. 올봄에는 3층 홀에 청년 공간도 들어올 예정이다.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는 “독립·예술영화, 부산 영화를 소개하는 공공극장으로 각종 영화제 개최, 지역민을 위한 상영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잦아들면 본격적으로 중구 영화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시네마 앞 거리에는 영화 메모리얼 스트리트가 만들어졌다. 중구청은 향후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이 있는 동광동, 대청동 등 영화의 거리 블록화를 추진해 원도심 영화 문화의 부활을 도모할 계획이다.

 


“가장 부산다운 곳.” 백년어서원 김수우 대표는 12년째 원도심 인문학운동을 펼치고 있다. “본래를 회복하는 인문학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본래적 장소인 원도심”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백년어서원을 비롯해 우등불, 내서재, 갤러리보명 등 다양한 인문 강좌를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이 대청로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우등불의 김경태 대표는 독서운동이 독립운동을 닮았다 생각해서 백산기념관 맞은편에 공간을 만들었다. 매달 길잡이를 초청해 회원들과 토론회를 연다. 독서소모임도 7~8개 정도 있다. 김 대표는 “5년이 되어 이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코로나19로 중단이 되어 아쉽다”고 전했다. 이성훈 대표가 운영하는 내서재는 달맞이언덕에서 3년 전에 중앙동으로 옮겨 왔다. 클래식 음악 감상이나 초청 강의 등 지인들과 배움을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공간을 같이 쓰는 뮤트스튜디오 이보리 대표가 만든 시각예술비평웹진 ‘쌜러드’와 함께 미술 관련 기획강좌를 열기도 한다.

 

 

 

■오래된 공간의 재구성

 

중구 곳곳에 산재한 근대건축물들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남성초등학교 후문 앞에 위치한 적산가옥 ‘옛 다테이시 주택’은 일본식 가옥과 서양 건축양식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 일본식 창고도 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석유판매점을 운영한 일본인 사업가 다테이시 요시오가 1930년대에 지은 이 건물은 중구청이 매입해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부산 16개 구군 중 유일하게 문화원이 없는 곳이 중구인데 이 건물에 중구문화원을 개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대로 건너편에 위치한 노티스는 1950년대 지어진 쌀창고를 되살린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은 문화행사장으로 쓰고 부산항이 보이는 2·3층에는 카페와 루프탑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부산의 작은 문화 공연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부산예술인의 청춘 마이크 랜선 공연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는 1918년에 지어진 한성은행 부산지점 건물을 부산시가 매입해 생활문화 거점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대청동 부산근대역사관은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와 함께 부산근현대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오래된 골목 안에도 새로운 문화공간이 들어서고 있다.

 

우선 보수동 책방골목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갤러리터 16’은 전영철 씨가 선친이 운영했던 책방 옆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지난해 8월 개관 때 책가도 민화전, 건축과 책방골목 포럼 등 문화이벤트를 준비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동주여고 학생들이 책방골목을 소재로 만든 단편영화 상영회, 책방골목 시집 전시회를 계획했으나 코로나가 재확산되며 행사를 연기했다. 전 씨는 “책방골목에 문화적 다양성을 부여하는 공간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고가길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브라운핸즈가 들어선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브라운핸즈 임원으로 활동 중인 고서점 양수성 대표는 “책방이 있는 상가 건물 옥상에 별도로 지어진 3층짜리 집을 개조하는 중인데 마당이 넓어서 문화행사도 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새로운 콘텐츠가 들어와서 서점과 공생하며 책방골목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목에서 찾아가는 내일

 

40계단길에서 창의가게를 낀 골목 안도 새롭다.

 

‘주책공사’는 이성갑 대표가 4년 동안 준비해서 야심 차게 문을 연 독립서점이다. 그는 SNS를 통해 골목 밖, 부산 밖의 고객들과도 활발히 소통한다. ‘독립서점 여행하다’는 ‘여기서 행복하자’를 모토로 하는 2평짜리 책방이자 감정코칭, 심리상담을 하는 공간이다. 고하나 대표는 골목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선다. 맞은편 잡화점, 동네사진관과 함께 원데이 골목마켓을 열고 모퉁이극장 등과 손잡고 ‘소소워크’라는 이름으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도 참여했다. 올해도 주변 가게, 공방 등과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대청로126번길 안쪽에는 심야책방 ‘미묘북’이 들어와 주변의 작은 카페들과 조화를 이룬다. 신창동 골목 안에도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 네가티브’, ‘책방 오월’ 등이 자리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구석구석 옛 골목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

 

영주동에서도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부산터널 옆에는 영주동 도새재생사업을 위한 공간 청년문화마을놀이터가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로크(로컬 크리에이터)-a’라는 공간에서 박보은, 윤혜령 두 청년예술가가 영주동을 브랜드화하는 상품을 만들고 주민들과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들은 올해 중으로 영주동 거주자와 영주동에서 일하는 생활자를 인터뷰한 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시영아파트를 개조한 전시공간 ‘영주맨션’ 인근에는 2019년 1월 ‘인문학당 달리’가 들어섰다. 인문학 전공자 연구 공간으로 시작해 시민들과 학문을 나누는 장으로 이용한다. 박선정 소장은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달리미술관을 개관했고, 최근에는 장서 1000권 정도의 미니 도서관도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영주동은 동구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확장성도 가지는 동네이다. 박 소장은 “도로를 따라 수평으로 네트워크가 쉬운 반면 영주동 위와 아래를 수직 구조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구가 문화예술의 원도심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부산의 미래 발전에서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랫동안 부산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했던 차재근 포항문화재단 대표는 “중구를 보면 일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의 배후지역이 연상된다”고 전했다. 차 대표는 “북항 재개발이 완료되면 부산역에서 중앙동, 광복동에 이르는 거리가 문화적 다양성을 채우는 배후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문화자유구역을 만든다면 중구가 독보적인 지역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