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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대구미술관 대구근대미술의 뿌리를 찾아서 '때와 땅'전

대구근대미술 망라하는 작가 64인 작품 140여점 소개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년)과 '경주의 산곡에서'(1935년)는 제작된지 9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색감과 조형요소가 선명해 당대 천재 화가의 화풍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붉은 흙과 민족을 상징하는 소재의 묘사, 비애의 정서와 같은 특징은 이 땅에 대한 사랑이며 땅이 가진 생명력의 표출이다.

 

이인성과 대구 수창학교 동창인 이쾌대의 그림은 1940년대 절정에 달한 그의 솜씨를 보여준다. 이쾌대는 해방공간의 이념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극복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 또한 그림 속에 가득하다. 그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말)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서 정면을 응시하며 휘날리는 바람을 맞고 있다. 밝은 미래를 향해 내닫는 '군상'(1948~1949) 시리즈는 눈을 뗄 수가 없다. 혼란과 갈등의 시기임에도 먼 저곳을 향한 민초들의 시선 하나하나는 조국과 민중의 저력을 믿는 낙관적 바람으로 표현됐다.

 

 

◆대구 근대미술 백미 한 자리에

 

두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작품 형식과 기법에서 당대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량과 원숙함이 물씬 묻어난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은 대구근대미술을 망라하는 작가 64인의 작품 140여점을 펼쳐놓고 대구근대미술의 백미를 조명한 '때와 땅'전을 1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 전시는 대구에 서양화구가 들어와 서양미술의 개념이 생긴 1920년대부터 한국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는 1950년대까지의 대구미술을 다루고 있다.

 

전시명 '때와 땅'은 단순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기보다 일제강점기 시대적 고난에 맞서며 나라를 지키고자 한 의지와, 해방과 전쟁의 틈새서 희망을 이어나간 근대 예술가들의 정신, 즉 '시대정신'과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고난 가운데 예술을 꽃피웠던 이 전시는 모두 5개 섹션으로 펼쳐지고 있다.

 

첫 번째 섹션은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로 대구 전통 서화가 미술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살핀다. 석재 서병오의 병풍 작품을 비롯해 죽농 서동균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은 '대구 근대의 색'으로 서양화 도입 후 대구 최초의 양화전문단체인 향토회를 조명한다. 김용준 등 평론가들의 주장으로 향토성 논쟁이 일던 1930년 설립된 향토회의 특징과 이를 이끈 화가들의 면면을 만나 볼 수 있다. 100년을 앞두고 있는 수채화의 선명한 색감은 마치 요즘에 제작된 작품처럼 선명하다.

 

세 번째 섹션은 '이인성과 이쾌대'로 주로 1930년대 이인성 작품과 1940년대 격동의 조국을 그린 이쾌대의 대표작과 조우하는 시간이 즐겁다.

 

네 번째 섹션인 '회화 전문(專門)에 들다'는 근대미술이 성장하게 된 요인으로 사제관계와 교육의 영향을 다룬다. 일본인 교사와 일본 미술의 영향, 전문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미술인들을 만난다.

 

다섯 번째 섹션은 '피난지 대구의 예술'로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에 지켜온 예술정신을 통해 고통 속 예술의 혼을 지킨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시인 이상화 형, 이상정의 예술 행적 발굴

 

특히 이 전시는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는데, 하나는 대구근대미술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작가의 발굴이다. 1920년대 대구에 처음 서양 화구를 들여온 이로 알려진 이상정의 활동과 예술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정은 시인 이상화의 형이자 중국군 장교로 복무한 독립운동가다. 그는 계성학교 도화교사로 근무했고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에 양화 작품을 출품한 화가였으며 같은 해에 대구에 미술연구소 벽동사를 설립, 미술연구와 교육을 도모했다.

 

이번 전시에서 1925년경 중국으로 망명한 뒤 전각에 심취한 이상정이 자신의 전각 작품을 모아 편집한 인보집 2종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근대미술의 백미를 보여주는 이인성(1912~1950)과 이쾌대(1913~1965)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풍성한 아카이브도 볼 만하다. 서병오, 서동균, 이인성 등의 화가와 이상화, 현진건, 윤복진 등 문학가들의 교류와 행적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저서 및 자료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대구근대미술을 지킨 사람들'을 주제로 제작된 작가들의 유족 인터뷰와 대구 1세대 미술사가 권원순의 인터뷰를 통해 대구근대미술의 맥락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은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과 '경주의 산곡에서' 두 점을 대여해 주었고, 이쾌대 유족은 대작 '군상Ⅰ'과 '군상Ⅱ'를 전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밖에도 서울, 부산, 대구, 안동 등 전국의 근대미술 소장자들의 도움으로 140여 점의 작품을 모을 수 있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가 갖고 있는 문화적 자양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면서 "대구근대미술의 정신을 느낄 수 있고 대구시민으로서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전시는 5월 30일(일)까지. 문의 053)803-7861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