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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 나무 기행]고려 태조의 스승 진공대사 충담 스민 사찰 옆 지키며 500년의 세월 이겨내

원주 흥법사지 느티나무

 

 

지정면 안창리 마을 원주 6호 보호수
김제남 신도비와 나란히 수백년 동행
마을서 가장 큰 키 수려한 외형 눈길


원주 남한강 주변은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 등 폐사지가 여러 개 있다. 과거 고려나 조선 시기 강은 교통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됐다. 강을 따라 물건과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강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사회, 문화가 발전하게 됐다. 강은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류에서 비옥한 토질을 만들며 생명과도 같은 곡식을 키웠다. 삼각주가 만든 대지 위에서 만들어진 곡식은 사람을 길러냈다. 곡식은 수만 번의 손길을 통해 만들어졌고 땅 위의 퇴적물처럼 사람들의 노고가 쌓여 지역인재를 만들어냈다. 기름진 땅이 만든 지역의 인재들은 국가의 부름에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라진 사찰은 수만 년 지나오면서 지역민의 땀과 정성이 모여 만든 공동체였다.

각각의 절터는 느티나무를 키우고 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 곁에 온 나무들이 과거 영광을 스쳐가듯 보여준다. 이곳은 불교 국가인 고려의 국사를 역임한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

원주는 고려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라는 국가를 운영하는 인물들을 배출하는 것은 물론이며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을 남한강을 통해 운송하며 나라의 세포 같은 유통망을 지닌 도시였다. 천년 넘게 강원도 수부도시를 유지한 비결은 남한강이 사람과 생산물을 실어 나르면서 경제 중심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튼튼한 경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불교 권력은 문화의 중심지로 더욱 도시를 공고히 만들었다.

원주 흥법사지(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산 67-3)는 신라 말 고려에서 번창했던 사찰이다. 고려 태조의 스승으로 불리던 진공대사 '충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제463호)는 주변의 법천사지, 거돈사지 탑비와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 무게가 있다. 머리 부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과 거북 중간의 동물이 있고 구름 속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는 용 모습이 조각돼 있다. 웅장하고 섬세한 조각은 최고의 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탑비에서 강가 방향으로 삼층석탑(보물 제464호)이 나지막한 산자락들과 어울리며 서 있다. 흥법사지 가는 길에 있는 지정면 안창리 마을의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도로변에 김제남 신도비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신도비는 묘 주변에 세우는 비석의 일종으로 종2품 이상 벼슬을 한 고관들만 세울 수 있다. 신도비 주인은 공언(恭彦) 김제남(金悌男, 1562~1613년)이다. 조선중기 문신으로 둘째 딸(인목대비)이 선조의 계비에 책봉되면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1613년 손자 영창대군을 왕위에 올리려 한다는 이이첨 등의 모함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의 아들 셋도 화를 입었고 부인과 며느리, 어린 손자 천석 등이 화를 면하여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618년 폐모론이 대두돼 인목왕후가 폐비되자 이미 죽은 그도 무덤이 파헤쳐져 부관참시의 수난을 겪었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관직이 신원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됐다. 경기도 양주군에 있던 묘소는 원주군 지정면 안창리 산 67-1로 이장되었다. 신도비는 1624년 세워졌고 글은 신흠이 지었다.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거북이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뒤를 바라보고 있다. 무덤의 주인이 죽어서도 부관참시되는 부침을 겪은 탓인지 자신의 과거 행적을 돌아보는 듯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거북을 볼수록 긴 여운을 준다. 어쩌면 당시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정치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느껴진다.

신도비와 나란히 서서 침묵의 세월을 보낸 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다. 거북과 두어 걸음 사이에 두고 500년 넘는 시간을 동행 중이다. 강원-원주6호 보호수인 느티나무는 외형이 수려하다. 나무둘레는 6m 되며 높이는 35m다. 마을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하고 있어 어느 곳에서든 눈에 들어온다. 이 나무들은 연암 김씨 집안에서 보호를 하고 있는데 수령은 신도비와 무덤을 조성할 때 심은 것으로 추정돼 500여 년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수지와 벗하고 있는 느티나무 외에 9그루가 더 있고 은행나무, 리키다소나무,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지금의 저수지는 할 일을 잃었다. 마을 주변의 논에 물을 대어 곡식 생산에 일조하던 저수지는 역시 제 역할을 잃어버린 겨리쟁기처럼 물러나 있다.

사진·글=김남덕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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