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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남을 위해 희생하라"…14일 선종 이문희 대주교의 삶과 걸어온 길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됩니다."

 

14일 선종한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가 신자들에게 항상 당부했던 말이다. 종교인으로서 '사랑'과 '희생'을 제일 덕목으로 삼은 이 대주교는 1983년 대구대교구 총대리 주교시절 교구 내 모든 일을 지휘·감독할 때도 사제들에게 "성직자가 되려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주교는 1986년 6월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열린 대교구장 착좌 후에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를 사목표어로 정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영원한 안식처로 향하는 길목에서

 

14일 새벽 선종한 이 대주교의 시신은 이날 오후 4시쯤 빈소가 마련된 계산성당으로 운구됐다. 사순절 4주일째인 이날 계산성당에서는 이 대주교의 영정과 시신을 모셔놓고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추모했다.

 

신자와 사제 300여명이 모인 이날 미사에서 조 대주교는 "계산성당은 고인이 주교서품을 받았던 곳"이라며 "내년이면 주교 서품 50주년이 되므로 잔치를 성대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나셨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어 조 대주교는 "이 대주교님은 2007년 교구장 퇴임 이후 식도암 투병을 해오셨다. 하지만 고통에 대해 별 말씀이 없었고 최근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교구장으로서 일할 때보다 하느님의 은총과 은혜가 훨씬 컸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회고하며 "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는 연도시간을 합쳐 평소보다 긴 70여 분간 진행됐다.

 

 

◆37세 우리나라 최연소 주교 서품

 

이문희 대주교는 1935년 9월 14일 대구에서 아버지 이효상(전 국회의장) 씨와 어머니 한덕희 씨 사이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엔 몸이 약해 의사가 되고 싶었고 중·고교 시절엔 아버지처럼 정치인이 되려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세상 일 별 게 아니다'는 생각에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사제가 되려는 아들을 아버지 이효상 씨는 반대했었다고 전해진다.

 

1962년 프랑스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리옹 신학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후 1966년 대구 동촌성당 임시 주임신부로 사제의 첫발을 내디딘 이 대주교는 1972년 우리나라 최연소 주교가 됐고, 1986년 대주교좌를 계승했다. 이때 이 대주교는 우리나라 교회사상 ▷보좌주교로서 교구장 승계 ▷정년 규정에 의한 최초 승계 ▷선임 서정길 대주교의 퇴임과 동시에 착좌라는 첫 트리플 기록을 세우게 됐다.

 

 

◆교회쇄신과 복음실천 운동 앞장

 

이 대주교는 1997년 주교가 된지 25년째를 맞은 은경축 기념식에서 교구평신도협의회와 함께 복음실천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교회쇄신을 위한 시노드를 열고 '함께 가자 생명의 길로'를 주제로 21세기 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할 것을 주문했다. 이 운동은 1990년 10일까지 전개됐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학 총장은 "이 대주교님은 미래에 대한 혜안이 깊었던 분"으로 기억하며 "대구가 낳은 큰별이 떨어져 무척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추도했다. 또 1993년 주교회의 의장시절엔 천주교 성직자 납세를 추진해 '성직자도 국민의 납세의무를 지키자'는 운동을 펼쳤다.

 

이 대주교는 이뿐 아니라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신자들이 책정한 교무금 모두를 탕감하는 조치를 통해 '빚의 탕감과 죄의 용서로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2003년엔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 100주년 학생가정대회를 열고 '가정은 작은 교회'라는 기치 아래 "원칙과 양보를 바탕으로 한 자기분수를 아는 마음을 가지자"는 운동을 펼쳤다. 2011년에는 교구설정 100주년과 교구 100년사를 정리했다.

 

 

◆따뜻한 감성과 탁월한 지도력의 교육자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조현권 신부는 "사제들의 아버지 같던 분의 선종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면서 "생전에 그 분은 대구 사제들이 대주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에 무척 감동했었다"고 기억을 소환했다. 특히 "사제 인사 때마다 개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옆에서 지켜보았다"고 했다.

 

조현권 신부가 대구신학교 1학년 시절 당시 보좌주교였던 이 대주교는 매주 한 번씩 신학교를 찾아 사제의 삶을 강론했고 특수사목 분야 사제들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또 학교의 커리큘럼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등 사제 교육에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이 대주교는 또한 직접 쓴 시집과 수상집 '밝은 날이 다가온다고 누가 알려줍니까'를 비롯해 '사랑으로 부는 평화의 노래' 등 다수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한편 이 대주교의 선종으로 3월 14일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추기경 2명(은퇴 1명 포함), 대주교 4명(은퇴 2명 포함), 주교 35명(은퇴 11명 포함) 등 모두 41명이다.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