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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나무기행]'금강저'가 지켜낸 신의 나무…이제 통일의 희망 피우리라

금강산 끝자락 고성 건봉사 팽나무

 

 

사명대사의 호국정신 깃든 건봉사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과 싸운 명소
신분 차별 없이 처사 사리탑도 모셔
신라때 세워져 1878년 산불로 타격
불이문 6·25전쟁때 남은 유일 건물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은 팽나무
불이문 옆에 서 있어 함께 화마 피해
동해안 지역서 유일한 보호수로 지정
박수무당 유래 신과 인간의 가교역할
제주해녀들과 함께 고성까지 올라와


강원도는 남과 북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행정명이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자치단체인 고성군, 철원군, 김화군 역시 둘로 나뉘어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분단은 혈육들을 갈랐고, 지명도, 땅도, 생각도 갈랐다. 휴전선 아래 고성군 끝자락에 건봉사(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라는 절이 있다.

과거 이 사찰은 금강산 자락에 있는 첫 번째 사찰로 설악산 신흥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금강산 관문에 위치해 있어 여행객들에게 휴식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1544~1610년)가 이곳에서 승병을 모아 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호국정신이 깃든 명소다. 쌓아 온 명성은 뒤로 하고, 지금은 작은 사찰로 참선 중이다.

사찰과 관련된 인연들을 살피고 싶으면 절 입구의 부도탑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대부분 사찰 부도탑의 주인공은 스님들이다. 하지만 이곳의 부도탑은 다른 사찰과는 구별된다. 스님뿐만 아니라 처사들의 사리탑도 함께 있다. 철저한 신분사회 였던 조선에서 이 사찰은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을 품고 있다. 누구나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교는 개개인의 수련에 따라 깨달음을 얻는 과정으로 종교보다는 개인 수련 성격이 더 강하다라는 말을 확인하는 절이다.

금강산 건봉사는 우리나라 4대 사찰(건봉사,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의 하나로 건립 시기가 신라법흥왕 7년(서기 520년)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371년으로 이 땅에 부처님의 자비가 퍼진지 149년 뒤에 생긴 사찰이라 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세조 10년 왕실의 후원 사찰로 지정받아 어실각, 전답, 친필 동참문이 경북궁에서 내려왔을 정도로 불교를 억압한 조선시대에도 위세를 떨친 명사였다.

사찰의 규모는 3,183칸으로 1878년 4월3일 산불로 소실됐다는 기록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영동지역의 산불의 위세는 대단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해안의 봄철 산불은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변하지 않는 자연재해로 이곳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숙명처럼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오늘 찾아가는 주인공 팽나무는 건봉사 입구 불이문 옆에 나란히 서 있다. 불이문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문구다. “진리는 하나다”라는 의미다. 건봉사의 불이문은 “금강산은 하나다”, “강원도는 하나다”, “우리나라는 하나다”라고 외치고 있다. 불이문 글씨는 해강 김규진(1868~1933년) 선생이 쓰신 것으로 안내판은 적고 있다.

해강은 다양한 재주를 갖고 있어 여러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사진가이기도 하며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서예가와 화가로 널리 활동하셨고 서울에서 사진관을 연 상업사진가로도 알려진 분이다. 1907년 일본에 건너가 사진술을 배워 와 서울에 천연당이라는 사진관을 개설했던 분이다.

불이문은 건봉사의 출입문으로 6·25전쟁 때 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불을 피해 간 것은 어쩌면 건물 기초석에 암각돼 있는 금강저 때문은 아닐까? 수호의 기능을 담당한 금강저는 불이문을 지켜냈고 그 옆에 사는 팽나무도 지켜냈다. 금강저의 은혜를 입은 팽나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잎을 틔우고 단풍을 달고 눈을 맞으며 어제처럼 오늘을 살고 있다.

팽나무는 사찰의 주춧돌과 함께 오래된 터줏대감이다. 바닷가지역을 중심으로 잘 자라는 팽나무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신과 주민들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이 나무 한자 이름은 박수(朴樹)다. 굿을 하는 남자 무당을 우리는 박수무당이라고 한다. 박수의 유래를 갖고 있는 팽나무는 우리 민족과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나무다. 팽의 어원은 '패다', '피다'이다.

'이삭이 패다', '꽃이 피다'는 과실을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게 된다. 그래서 팽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북 강원도가 만나는 고성군은 통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현장이다. 팽나무의 꿈과 희망을 고성군에 심으면 어떨까? 고성군 건봉사 팽나무는 강원도 동해안지역에서 자라는 보호수 중에 유일하다.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성지역 해안가에는 물질하러 제주에서 올라온 해녀들이 있다. 바다에서 삶을 일궈 온 제주 해녀들은 강원도에 새로운 가정을 꾸려 왔다. 삼척 황영조 어머니가 대표적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폐활량이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아들에게도 전해져 이룩한 쾌거라는 기사가 줄을 잇기도 했다.

제주의 성황목을 살펴보면 거의 팽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해녀의 숨비 소리와 동행하며 고성까지 올라온 팽나무는 제주인들의 상징처럼 보인다. 과거 4·3항쟁의 여파로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에는 팽나무만이 남아 그날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고성=김남덕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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