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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 나무 기행]부처님 마주하며 천년의 대화나눠

영월 요선정 소나무

 

 

도 문화재 4호 '요선정' 숙종 헌사 어제시 품어
정자 옆 마애불좌상 도내서 드물어 가치 높아
불상 옆 나무들 크기 작지만 오랜 연륜 보여줘


서울에서 한강 발원지를 따라 올라가면 양평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나뉜다. 남한강은 다시 동강과 서강으로 나뉜다. 동강은 과거 댐 건립 반대 운동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다. 반면 서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해 평창강, 주천강, 서강으로 이어진다. 요선정은 주천강가에 위치한 정자로 숙종 임금의 어제시를 품고 있다. 한옥은 건물의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이 건물은 한 개의 건물에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다.

요선정(邀僊亭), 모성헌(慕聖軒). 요선정(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은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의미이고, 모성헌은 임금을 사모하는 건물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요선정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건립된 정자로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4호로 등록돼 있다.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이 직접 헌사한 어제시는 원래 주천강 북쪽 청허루에 있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붕괴돼 방치됐다. 어제시 현판은 일본인 주천면 경찰지소장이 갖고 있었다. 지역의 생각 있는 원씨, 이씨, 곽씨 등 삼성이 조직한 모임(요선계)이 뜻을 모아 현판을 사들여 요선정을 건립해 모셨다고 한다.

건물 오른쪽으로 큰 바위에는 암각이 있다. '정사2월 태수행 석명선'. 1917년 영월군수 석명선(1870~?)이 다녀갔다고 적고 있다. 석명선은 강릉군 출신으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대표적인 친일인사다. 1884년에 내부 주사로 대한제국의 관료를 시작해 나라가 망해도 계속 총독부 인제군수, 영월군수, 철원군수, 횡성군수를 지냈다.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바위에 새겨 치적을 알리고자 했으나 본인의 뜻과는 반대로 친일 행적을 대대손손 후손들에게도 남기는 유적이 됐다. 영월군이 암각자 아래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해 후대들에게 알렸으면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발걸음에 무거워졌다.

요선정 바로 옆에 불상이 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거친 맛이 좋은 이 불상은 강원도무형문화재 제74호다. 전체 높이가 3.5m에 이르고 암벽 위에 올라선 둥근 바위 면에 새겨져있다. 부처님이 새겨진 바위 모양은 마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잘생긴 불상이다. 불상은 보기에 따라 선 듯 앉은 듯 보인다. 마애불좌상은 상체와 왼손이 부자연스럽게 표현돼 있지만, 비율이 잘 맞는 조각상만 최고는 아니듯 투박한 맛이 더 정겹다. 마애불좌상은 도내에서는 아주 드물어 가치가 높은 고려시대 불상이다. 마애불 앞으로는 마치 대화를 하는 듯 소나무가 펼쳐져 있다. 천년의 시간 동안 나눈 대화 내용은 부처님의 흐뭇한 미소를 통해 짐작하게 만든다.

마애불좌상이 새겨진 바위 주변으로 소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뒤편의 바위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소나무들은 서강(주천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영양상태가 부족한 곳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작지만 오랜 연륜의 용트림을 보여주고 있다. 석불 앞에는 탑이 서 있다. 기단부분의 석탑은 예전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는 주변의 돌을 쌓아 올렸다.

불상 아래 주천강에 천연기념물 제543호인 돌개구멍이 있다. 오랜 물 흐름이 만든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펼쳐져 있다. 생김새가 다른 돌들이 신선을 모시는 요선정 이름에 걸맞게 펼쳐져 있다. 바위 위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물을 품고 그 물은 또 하늘을 품고 있다. 파란 청색의 바위는 두 개의 띠를 이뤄 청룡이 요선정에서 내려와 하천으로 들어가고, 그 옆엔 여덟 그루의 소나무가 둘러서 있어 마을 풍광을 운치 있게 만들고 있다.

김남덕 사진부 부국장 kim67@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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