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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8·15 광복절 기획] 기미년 ‘마산 삼진의거’ 재조명

헌병 패대기치고 돌진… 8의사 ‘불굴의 항일정신’
1919년 4월 3일 8000여명 군중
진북면 황교서 대치·전진하다

“이교재 선생의 정혼(精魂)의 뼈에다 8의사의 행동미의 살을 붙여 후세에 독립정신의 자료가 되어 유의미한 사업이 있기를 빌며 일행은 일로귀로에 올랐다.”

 

1954년 4월 23일 경남신문의 전신인 마산일보에 연재됐던 기행문 ‘삼진기행 - 황교 교반의 전적지, 장렬히 순국한 8열사’의 끝맺음 말이다. ‘H생’이란 필명을 사용한 기고자는 경남언론의 선구자로 알려진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당시 마산일보 사장)이다.

 

김형윤 선생은 9편의 기행문을 통해 1919년 4월 3일 마산 삼진의거 당시 순국한 8의사의 독립정신이 후대에 널리 계승되길 간곡히 기원했다. 그러나 67년이 지난 2021년, 기미년 전국 4대 의거로 평가받는 삼진의거와 8의사는 삼진(진전·진북·진동) 지역민들의 관심으로 명맥만 유지될 뿐 역사적 가치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19년 4월 3일 8000여명 군중
진북면 황교서 대치·전진하다
김수동 의사 등 8명 총격에 순국

지역민 주도 창의탑·묘역 건립
재현행사 등 계승하고 있지만
관련 단체 고령화로 추진 한계

2019년 삼진의거기념사업회 발족
“독립기념관 ‘삼진’ 명칭 포함해
8의사 정신 계승하고 널리 알려야”

 

 

 

◇일본 경찰 냇가에 패대기… 이어진 총성에 희생된 8의사= 1919년 4월 3일 오후 2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던 8000여명의 군중은 진북면 사동리 황교(황새기 다리) 앞에서 멈춰 섰다. 이들은 6일 전 제1차 삼진의거 당시 투옥된 독립투사들의 석방을 촉구하고자 진동 헌병주재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리 반대편에는 무장한 일본헌병 등 30여명이 저지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무장한 일본군을 본 군중은 주춤했다. 앞장서서 군중을 독려한 인물은 비밀리에 삼진의거를 규합한 김수동(당시 44세) 의사다. 김수동은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황교를 질주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일본 헌병을 단숨에 다리 아래 냇가에 패대기쳤다. 하지만 헌병은 몸을 일으키며 총을 쐈고 김수동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숨졌다.

 

김수동과 함께 전진하던 변갑섭(24세) 의사는 김수동의 태극기를 잡아들고 재차 돌진했다. 헌병은 그의 앞을 가로막고 검으로 변갑섭의 오른팔과 왼팔을 내리쳐 양팔이 잘린 채 쓰러졌다. 이에 분노한 군중은 헌병에게 돌진했지만, 무차별 총격으로 변상복(26세), 김영환(미상), 고묘주(22세), 이기봉(26세), 김호현(26세), 홍두익(27세) 의사가 숨을 거두고 22명이 크게 다쳤다. 일제의 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됐고 8의사의 시신은 날이 저물어서야 주민들에 의해 수습될 수 있었다.

 

◇창의탑·묘역 건립했지만 지역 학생들조차 몰라= 삼진의거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8의사 독립정신을 알리기 위한 사업은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3월 지역 유지들에 의해 사동교 건너 암벽에 ‘8의사 창의비’가 세워졌다. 이어 1963년 10월 삼진 주민들의 기금으로 황교 건너편에 ‘8의사 창의탑’이 건립됐으며, 2013년 구산·삼진연합청년회 주도로 국·시비 2억원이 투입돼 탑이 신축됐고 창의비도 이 위치로 옮겨져 왔다. 각기 따로 묻혀 있던 8의사의 묘도 1981년 4월 주민들이 진전면 양촌리의 산자락에 터를 마련하고 한곳에 이장하면서 ‘8의사 묘역’이 조성됐다.

 

삼진의거를 재현하는 행사도 지역 단체에 의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1999년 4월 3일 삼진의거 80주년을 기념해 삼진면청년연합회(현 구산·삼진연합청년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는 오늘날까지 지역 중·고등학생 등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지역민들이 중심이 돼서 삼진의거와 8의사 정신 계승에 나서고 있지만, 관련 지역 단체들은 고령화로 인해 사업 추진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김용국 구산·삼진연합청년회 이사는 “재현행사 때마다 진동지역 중·고등학생들을 초청하는데 유관순 열사는 알지만 8의사는 잘 알지 못한다. 삼진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나선 자랑스러운 역사임에도 무관심하다 보니 더욱 열심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현재 단체 회원 대부분이 나이가 많이 드셨고 생활을 병행하면서 재현행사를 추진하고 있기에 어려운 점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9년 사업회 발족…“독립기념관 명칭에 ‘삼진’ 넣어야”=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삼진의거와 8의사의 독립정신을 후대에 널리 계승해야 한다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이들이 있다. 창원삼진독립의거기념사업회다.

 

이 사업회는 삼진의거 100주년을 맞았던 2019년 8월 기존 창원시애국지사추모사업회가 개칭해 발족한 것으로 허성무 창원시장의 공약사항인 ‘8의사 창의탑 성역화 사업’ 실현을 목표로 한다.

사업회 회장을 맡은 김익권 전 마산시의원은 지난 1999년 8의사 창의탑 주변 성역화 사업을 최초로 공론화했던 인물이다. 당시 성역화 사업은 청와대에 건의안이 제출되는 등 사업 추진이 기대됐지만 국가사적지 미지정과 시의 추진 의지 부족으로 결국 무산됐다.

 

김익권 회장은 “삼진의거 8의사의 기백과 혼은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졌지만 그동안 지역사회는 삼진의거에 대해 소홀히 대해 왔다”며 “선조의 유업을 자랑스럽게 물려주고 독립과 민주정신의 뿌리가 창원 마산지역에 영원히 자리 잡아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회를 발족했다”고 말했다.

 

현재 창원시는 독립운동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전면 임곡리 애국지사당 일원에 오는 12월 착공을 목표로 창원시 독립운동기념관(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회는 독립기념관 명칭을 ‘삼진독립기념관’으로 확정해 삼진의거를 경남 대표 만세운동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은 “기미년 3·4월 한반도에는 618곳에서 747회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 중 삼진의거는 4대 의거로 평가받는다”면서 “삼진 지역에 건립되는 독립기념관에 ‘삼진’이라는 명칭이 반드시 포함돼 8의사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