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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연극 ‘지정’ “당신은 AI의사의 진료를 받을 것인가?”

인간과 과학 관계 다룬 연극 ‘지정’ 초연
9월 3~5일 ACC…이호재·이정미 무대에
작가 장우재 “신기술 등장, 미래에 대한 질문”
연출 박정희 “연기 통해 관객 상상력 자극”

 

사람의 인지신경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AGI(범용인공지능)를 정신상담 분야에 적용한 멀지 않은 미래. 몇 년 전 단편으로 세계적인 영화제에 진출해 능력을 인정받은 영화과 4학년 제니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제니는 AGI 정신과의사 콜리와의 상담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지정’에 관심을 둔다. 지정은 제니가 힘들어 하는 심리적 장애요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절하는 기법이다. 결국 지정을 선택한 제니는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신경을 통제하다는 상상력을 발휘, 인간 정신과 첨단기술과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이 오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ACC 예술극장 극장 1에서 연극 ‘지정 Self-Designation’을 초연한다.

이 작품은 AGI가 사람의 인지신경을 조절하고, AGI 정신과의사가 등장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제니가 세계적인 영화제를 목표로 작업해가는 과정에서 AGI 정신과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심리를 조절하는 이야기다. 제니의 ‘지정’ 전·후를 압축한 여정을 보여주면서 극도로 발달된 기계들과 공존하는 멀지 않은 미래에 화두를 던진다.

연극은 목포 출신으로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장우재(대진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작가의 작품이며, ‘오셀로’, ‘아버지’, ‘방문’ 등을 연출한 극단 풍경의 대표 박정희 연출이 참여했다. 무대에는 배우 이호재·이정미·김정영·나경민 등이 오른다.

 

 

최근 장 작가와 박 연출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소 AI나 AGI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는 장 작가는 ‘현재’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위해서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시각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통해서는 ‘현재’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 너머의 세계관인 포스트휴먼, 넌휴먼 등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고자 한다”며 “그래서 AI와 AGI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을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기술들이 많이 생기고 있죠. 이와 관련해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기술과 어떻게 매칭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작가로서 고민이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재 감기처럼 흔해진 우울증을 겪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우울증을 조절해줄 장치가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 장치가 AGI 의사인 거죠. 이렇게 AGI로 인해 변모하게 될 미래를 관객들과 함께 짐작해보고, 그 짐작을 통해 현재를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박 연출은 이러한 장 작가의 스토리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AI가 인지신경을 조절한다는 것이 지금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가까운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출은 “이번 작품 컨셉을 ‘해피 디스토피아’로 정했다”며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알고리즘의 통제 속에서 행복하게 욕망을 이루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셨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는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의 표정, 목소리 등 연극적 요소를 최대한 살려 AGI가 친밀하게 묘사될 수 있도록 했죠. 관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서요. 인간 내면에 잠자고 있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에 중점을 두셨으면 좋겠어요.”

장 작가는 AI와 AGI가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인간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기계를 발전시킬 것인가 보다 우리가 왜 이러한 기술을 원하며, 또 이러한 기술을 이용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즉 새로운 기술을 통해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미래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출은 작품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주기 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 질문을 가져보길 권하며 주인공의 지정 전과 후의 변화가 관람 포인트라고 말한다.

그는 “어떠한 극한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 AGI 도움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며 “기술에 의존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 작가에게는 이번 작품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오랜만에 작품을 들고 광주에 왔다. 나도 그렇지만 작가라면 누구나 광주에 부채의식이 있을 것”이라며 “부채의식 속에서도 ‘지정’이라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광주 시민과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AI나 AGI를 주제로 했다고 해서 공연이 어려운건 아니예요. 지정 전과 후를 쭉 보시면서 주인공의 변화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4일 공연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돼 있으니 많이들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