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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엑스포 스토리 ⑩] 게르니카·자유의여신상…엑스포가 낳은 시대의 예술

대한민국의 미래, 부산엑스포 유치 응원 연속 기획
엑스포 스페인관 전시작품 피카소 대작 게르니카
자유의 여신상까지 엑스포는 예술 발전에도 큰 기여

 

월드엑스포라 하면 첨단 산업 전시품을 주로 떠올릴 테지만, 엑스포에 얽힌 사연을 품은 위대한 예술 작품도 무시 못할 주인공이다.

 

1851년 런던 수정궁에서 첫 엑스포가 열렸을 때 미술은 4대 전시 분야 중 하나였다. 이어서 개최된 1855년 파리 엑스포의 공식 명칭 역시 ‘파리 농업·산업·미술 생산품 월드엑스포’였다. 독립된 미술 전시관에 29개국 작가들이 출품한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 5000여 점이 전시됐다. 이후 예술품 전시는 엑스포의 전통이 됐다.

 

세계 각국은 엑스포 국가 전시관을 통해 자국 문화와 예술의 우수성을 뽐내려고 경쟁했다. 그 과정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작가와 예술 작품들이 엑스포를 통해 탄생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다. 게르니카는 1937년 파리 월드엑스포 스페인관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엑스포가 탄생시킨 최고의 미술 작품으로 손꼽힌다.

 

당시 프랑코 독재 세력에 맞서 스페인 내전을 치르던 공화국 정부는 파리엑스포 스페인관의 실내를 미술품으로 채우기 위해 피카소와 미로, 칼더 등 여러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피카소는 대형 벽화를 그릴 계획이었지만, 수년 전에 의뢰를 받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벽화 제작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엑스포 개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37년 4월, 스페인 북부 지역 게르니카에 독재자 프랑코를 지원하려는 독일군의 공습이 진행됐다. 2000명에 가까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영감을 얻은 피카소는 두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집중해 게르니카를 완성한다.

 

엑스포 전시장에서 죽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와 희망의 등불 아래 죽은 병사 등 평화를 향한 묵직한 메시지를 입체파 기법과 흑백의 명암으로 담아낸 게르니카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영향을 받아 세계 문화 예술계에서도 게르니카의 비극과 관련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르니카를 처음 접한 관람객은 가로 7.7m 세로 3.5m에 달하는 작품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이어 전쟁의 비극에 대한 강렬한 표현과 시공을 초월한 인도주의적 메시지를 읽어내느라 작품 앞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지금도 게르니카를 직접 보려는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게르니카는 엑스포 전시 이후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전시된 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가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1981년 고국으로 돌아간다. 현재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엑스포를 위해 제작된 미술 작품과는 좀 다른 성격이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엑스포의 인연도 꽤 흥미롭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프랑스의 선물로, 프랑스 국민들의 모금 운동을 통해 1875년부터 제작이 진행됐다. 정식 작품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다.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가 높이 46m, 무게 250t, 214개 조각으로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은 예술 조각품이자 건축물이다. 내부에 계단과 승강기가 설치돼 머리 부분에서 외부를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이 내부 철골구조를 설계했고, 여신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런데 애초 계획보다 제작이 지연되면서 여신상의 횃불을 든 오른팔 부분만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 엑스포 전시장에 전시됐다. 횃불이 있는 발판 위에 올라가 자세히 관찰하려는 관람객에게 입장료 50센트를 받아 설치비로 사용했다. 미국 독립 선언이 이뤄진 장소인 데다 1800년까지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는 가장 알맞은 개최지였다.

 

여신상의 머리 등 일부 조각은 2년 뒤인 1878년 파리 엑스포에 전시됐다. 결국 1885년에 모두 완성된 자유의 여신상은 이듬해에 미국으로 수송된 뒤 뉴욕 맨해튼 남쪽 리버티섬에 설치됐다. 이후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려는 관광객이 끝도 없이 리버티섬으로 밀려들었다.

 

대한민국이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2021년, 인류는 여전히 위대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2030년 부산엑스포가 열리게 된다면, 북항의 드넓은 엑스포 전시장에서 대한민국 ‘K 문화’을 비롯해 각국이 출품한 문화·예술 작품이 다시 한번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부산에 온 세계의 예술품 가운데 어떤 작품이 게르니카를 능가할 정도로 세계인을 놀라게 할지 사뭇 기대된다.

 

※ 공동 기획 :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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