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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4.3으로 핏줄이 엉켜버린 가족관계 시급히 정정돼야

제주도, 19일 법원행정처 방문...정정 신청 대상 기준 완화 요청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많은 도민이 희생된 가운데 일가족까지 몰살당하는 대량 학살로 가족관계 마저 뒤엉켜 버린 가운데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법 개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949년 봄 당시 4살이었던 김모씨(76)는 군인들이 강경 진압 작전으로 일가족 모두가 한날한시에 희생됐다. 당시 김씨는 제적부(호적)에 이름이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 모두를 잃으면서 먼 친척의 아들로 입적됐다.

4·3당시 17살이던 이모씨는 제주시의 화북동에 있는 한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군경 무장대에 의해 행방불명됐지만 가족관계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무적자여서 지금도 4·3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외에 희생자를 대신해 할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된 경우 아버지와 형제지간이 됐고, 큰 아버지의 양자로 간 경우 아버지와 조카사이가 되는 등 가족관계가 뒤틀려 버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개정 4·3특별법 시행으로 지난 7월부터 4·3희생자와 유족에 한해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에 대한 정정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청 대상은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희생자의 ‘사망 일시’ 또는 ‘사망 장소’로만 국한돼 지금까지 접수된 사례는 18건에 머물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오임종)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을 위해 지금이라도 내 가족과 내 핏줄을 바로 잡아달라며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개정된 4·3특별법은 ‘제적부’에 있는 희생자만 가족관계부 정정 신청이 가능하고, 정정의 범위도 사망기록이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부 사망기록 작성과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희생자의 사망 장소 정정만 가능한 상태다.

4·3특별법은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 4·3중앙위원회의 희생자 결정에 따라 대법원 규칙이 정하는 절차로 가족관계부를 정정하도록 했지만, 현실에서는 생부(生父)·생모(生母)의 친생자임을 확인하는 친자확인 소송을 해야만 가능한 상태다.

문제는 친자확인은 생부·생모와 DNA가 99.999%가 같다는 유전자 검사결과로만 재판부가 인정을 해주면서 희생자가 행방불명된 경우에는 유전자 감식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가족관계부 신청권자를 희생자와 유족은 물론 친부모가 아닌 타인의 호적에 올라서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해관계인(양자·양녀)도 포함해 줄 것을 지난 19일 법원행정처에 건의했다.

강민철 제주도 4·3지원과장은 “개정 4·3특별법 취지에 맞게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법원행정처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며 “가족관계부 정정 기준을 완화해 주는 것은 70년 넘게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4·3특별법상 가족관계부 정정 조치는 어렵지 않지만, 향후 보상금 지급(희생자 1인 8960만원 예정)에 따른 상속권자를 확정하려면 민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민법 개정 시 상속뿐만 아니라 채권·채무 등 재산권과 여권 등 각종 공증서까지 변경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로 인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