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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또 한 분이 떠났다…일본 사과와 배상 받을 날 올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운동의 상징’ 이금주 할머니 별세
일 정부·전범기업 상대로 손배 청구소송 일본 사법부에 제기
광주유족회 30년 이끌며 광주 천인소송 등 대일 소송 7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영원한 대모(代母)이자 인권운동의 상징인 이금주 할머니<사진>가 끝내 소원이었던 일본의 사과 한번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촉구,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이금주 할머니가 지난 12일 밤 11시 50분께 별세했다. 향년 102세.

이금주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43년, 일제에 의해 남편을 잃었다. 이 할머니의 남편 김도민씨는 결혼 2년 만인 1942년 일본 해군에 강제 징집돼 1943년 태평양 전쟁 중 사망했다.

이 할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가지고 살던 지난 1988년, 6월 항쟁이후 결성된 태평양전쟁 희생자 전국유족회 발족과 함께 주변의 권유를 받아 예순 아홉의 나이에 광주유족회장을 맡았다.

이 할머니가 회장을 맡게 된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는 1988년 당시 전국유족회의 한 지역 조직으로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과 관련한 전국 유족회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독립 단체로 활동해 왔다.

이 할머니는 1992년 일명 ‘천인소송’이라고 불리는,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시작으로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일본 외무성 자료 정보공개 등 7건의 소송을 주도했으며, 국내에서도 2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일본에서의 천인소송 이외에 본인이 소송 당사자가 아니였음에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명의로 여러 소송을 주도했다.

이 할머니는 소송을 위해 노령의 몸을 이끌고 80여 차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등 30여년 간 유족회를 이끌었다.

비록 결과는 번번이 패소였고, 일본 법원에서 기각당한 것만 17차례에 달했으며 지난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했지만, 할머니와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지난 2004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또 지난 2018년 대법원이 양금덕 할머니 등 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이 판결을 두고 이 할머니의 30년간 투쟁이 주춧돌이 됐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13일 오후 이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시 서구 천지장례식장에서 만난 손녀 김보나씨는 “할머니는 눈물겨운 일본에서의 소송을 버텨내시면서도, 모든 국민들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아마 지난 2019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본제품 불매운동 소식을 온전한 정신에 들으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것”이라면서 “할머니 생전에 일제의 사죄와 반성의 말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이 손녀로서 너무나 죄스럽다”고 말했다.

소송을 함께해왔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저번에 얼굴을 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그래도 편히 떠났다. 이제는 저 세상에서 훨훨 날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