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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라떼는 말이야]반세기 전 한국 빙상 핫 플레이스 ‘춘천 공지천'

 

 

동계스포츠 산실로 각광

대규모 야외링크 만들기 좋아
일상 속에 동계체육 자리매김

 

1971년 52회 전국동계빙상대회
특설경기장에 관중 북적북적

TV보다 라디오 대세던 시절
시민들에겐 좋은 볼거리 선물


제24회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지난 4일 막을 올렸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91개국에서 약 2,900명의 선수가 참가하고 있다. 한국은 스키와 빙상, 컬링, 봅슬레이스켈레톤, 루지, 바이애슬론 등 6개 종목 63명의 선수를 포함한 124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금메달 목표는 1~2개, 15위권 이내 진입이라고 하는데 대회 초반부터 쇼트트랙에서의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으로 메달 사냥에 먹구름이 끼어 있는 상태다. 중국의 텃세와 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종합 7위(금 5·은 8·동 4) 달성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이지만 위기의 순간, 뚝심과 근성으로 저력을 발휘해 온 대표 선수들이 있었기에 선전을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의 동계올림픽 도전사(史)를 살펴보면, 1948년 1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5회 동계올림픽이 동·하계를 통틀어 태극기를 들고 참가한 첫 대회로 기록된다. 이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회(제6회)를 제외하고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대회(제7회)부터 모든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냈으니 메달 수와는 상관없이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메달을 수확한 것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제16회) 때였다. 김윤만이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은메달로 최초의 메달을, 김기훈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에 이름을 올린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 대회에서 최초의 금메달과 은메달은 물론 동메달(쇼트트랙 이준호)까지 모조리 따내며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성적인 10위(금 2·은1·동 1)를 기록하게 된다.

이 같은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에는 이들의 실력을 꾸준하게 향상시키게 한 국내 대회,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 동계대회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동계대회는 당시 동계빙상대회, 스키대회 등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사진①은 1971년 1월15일 춘천 공지천에서 열린 제52회 전국체전 동계빙상대회 개막식 모습이다. 이 대회에는 모두 1,147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선수들보다 몇 배는 더 돼 보이는 춘천시민들의 모습이 특설링크가 만들어진 공지천변에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TV보다는 라디오가 대세이던 시절이니 이보다 좋은 볼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몰린 비밀 하나 더. 당시 기온이 영상이었다고 한다. 마냥 추워 보이던 짧은 피겨복의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서 잠깐, 당시 엄병길(강원도지사) 강원도체육회장의 환영사를 들여다보자. “연 3년간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춘천을 찾아주는 각 시·도 선수단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해를 포함해 내리 3년 동안 전국체전 동계빙상대회가 공지천에서 연이어 열렸다. 지금이야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당시 춘천 공지천은 국내 빙상스포츠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이었다. 춘천은 추운 날씨 때문에 대규모 야외링크(사진 ②)를 만들기 쉬워 동계스포츠 대회 유치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도 동계스포츠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에 스케이트나 앉은뱅이 썰매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들에게 정식 선수들의 제대로 된 경기를 직관하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였겠는가.

제52회 전국체전 동계빙상대회 개회식은 200여명으로 구성된 춘천여고생의 체육대회가 합창과 그룹스케이팅 등 식전 행사, 박남환 당시 강원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선서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게 된다. 동계대회는 기온이 영하를 유지해야 하지만 1971년 1월 날씨가 계속해서 푸근해지면서 개막 3일 전인 12일까지도 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말들이 나왔다. 최고 기온이 영상 6도에 달했으니 대회 관계자들은 분명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왠지 지금 열리고 있는 베이징동계올림픽대회가 눈이 내리지 않아 세계 최초 100% 인공눈으로 대회를 치르면서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오고 있는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아무튼 대회는 사흘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1월17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장 먼저 빙질 문제가 나왔고, 1971년 2월7일부터 일본에서 열린 삿포로 동계프레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대거 빠지는 바람에 전반적인 기록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선수 선서를 했던 강원대 박남환 선수가 1,500m에서 한국 신기록을 기록했고, 원주 일산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이경희 선수가 여자국민학교상급 1,000m 경기에서 여고부 기록보다도 빠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해 빙상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편 제52회 전국체전 스키대회는 1971년 2월25~27일 대관령 슬로프에서 열리게 된다.

오석기기자sgtoh@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