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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고창 고인돌유적] 거석문명의 신비…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 분포

청동기 시대 대표적 무덤 양식
탁자식·개선식·기반식 등 형태
1.8km 구간 447기 이상 분포
2000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돌아가 보자. 때는 겨울 초입, 농사철이 지난 들판은 황량하다. 무채색의 들판은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올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이 앞선다. 저장해둔 곡식이라 해봐야 보잘 것이 없다. 나락 서너 바가지와 보리 몇 줌이 전부였다. 지난여름은 유독 가뭄이 심했다. 손바닥 만한 밭뙈기에 심은 작물이 말라 죽어버렸다.

별 수 없이 올 겨울은 사냥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멧돼지나 토끼를 잡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눈가 귀가 밝아졌는지 짐승들은 덫에 잘 걸리지 않는다. 더욱이 움막집이 늘어나면서는 짐승들이 마을 가까이로는 내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좀더 정교한 연장을 만들어야 한다고들 했다. 날카롭게 제작하면 짐승을 잡기가 더 수월할 거라는 얘기였다. 주민들은 이번 겨울 동안은 돌칼과 돌낫을 뾰족하게 다듬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을 일을 주도적으로 돌보던 어르신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에는 건강해보이던 어르신이었는데 배앓이를 앓다가 심한 탈수증을 겪었던 모양이다. 날고기를 먹은 것이 잘못 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들렸다. 어르신은 사냥과 농사에 대해서만큼은 마을 1인자였다.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든 칼과 낫을 갖고 있었다. 사냥을 할 때 늘 앞장서서 짐승을 쫓았고 단번에 제압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어르신을 존경하고 따랐다. 장례만큼은 모두가 나서서 최대한 예를 갖춰 치르기로 했다.
 

장례는 고인돌을 운반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커다란 돌을 장지에까지 운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산마루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돌이 어르신 무덤으로 점지됐다. 마을 장정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도구를 들고 산등성이로 모여들었다. 고인돌 운반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나마 근동에 장례를 쓸 수 있는 돌이 많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장정들은 며칠간 마을과 가까운 무덤자리에까지 거대한 돌을 운반하느라 애를 썼다.

 

 

그렇게 고창 고인돌유적지에서 옛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눈앞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역류해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고인돌은 하나하나가 의미있는 역사였다. 크고 작은 새까만 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진귀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밀집 분포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거석문명의 웅장함과 신비가 깃든 유적지다. 고인돌은 고창천과 성틀봉 사이는 물론 산기슭과 평지를 따라 흩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바다 위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조금 멀찍이 떨어져 보면 까만 염소 똥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지난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곳에는 천을 따라 모두 447기 이상의 고인돌과 그 흔적이 널려 있다. 자료에 따르면 도산리 5기, 죽림리 261기, 상갑리 181기 등이 분포돼 있다. 1.8km 구간을 따라 펼쳐진 고인돌 군락은 청동기 시대 농경생활을 했던 선사인들의 주거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주민들은 주로 농경생활을 영위했다. 천렵과 사냥, 열매 따기 등도 주요한 식량 보급원이었다.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 유물은 곡식을 수확하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반달칼과 돌낫 등의 도구 등이 있다. 이밖에 탄화된 쌀을 비롯해 보리와 조, 기장 등도 발견됐다.

이곳 유적지에는 짚으로 만든 움막이 있다. 청동기인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보이는 움막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탓에 집은 비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움막은 오늘날 초고층 고가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락의 공간이었을 게다. 작은 화로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밖에선 눈보라가 치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화롯불을 사이에 둔 그들은 움막에서 그들만의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다.

걸으면서 찬찬히 고인돌의 특징을 톺아본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가 눈에 띈다. 기록에 따르면 탁자식, 개선식, 기반식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과 기반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지상석곽식도 있다. 다양한 양식은 중국,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코스별 안내도에 따르면 이곳은 모두 4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에는 죽림리 중봉의 산등성이와 산 기슭에 분포하는 53기 고인돌과 잔존물이 있다. 탁자식과 바둑판식, 개석식 외에도 웅장한 조형미가 눈길을 끈다. 2코스에는 이주가 완료된 매산마을 옆에 위치하며 형태가 특이한 고인돌이 많다. 특히 대형 고인돌은 당시 공동체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며 공동체 집단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

3코스에는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매끈하게 보이는 고인돌이 분포한다. 기록에 따르면 절단면이 지니는 조형성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4코스에는 성틀봉 채석장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절리가 있는 고인돌 원석이 많이 분포한다.

 

 

유적지 인근에는 고인돌 박물관이 자리한다. 지난 2008년 9월 개관한 고인돌박물관은 3층 규모(연면적 3953㎡)로 축조방식과 청동기인들의 생활방식을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지난 1월 고창군은 박물관을 재개관해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했다. 실질적인 고인돌의 쓰임새와 당시 사람들의 활용 부분을 다각도로 조명하기 위해 축소모형의 디오라마로 구성했다. 또한 빔 프로젝터로 구성물의 입체감을 높였다. 전체적으로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재편했으며 군데군데 청동기 유물을 밀폐형 진열장에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