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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이영철의 제주여행] 폭풍우 몰아칠 때 웅장한 모습 드러내는 폭포

(10)엉또폭포
평상 시엔 늘 말라있는 건천
폭우 내린 뒤 물줄기 쏟아내
‘특이한 폭포’로 소개돼 인기
산책로 석가정 전망 운치 있어

 

세계 3대 폭포라면? 남미의 이과수, 북미의 나이아가라,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러면 대한민국 3대 폭포는? 쉽게 떠오르지가 않을 것이다. 좀처럼 그럴 듯한 폭포 이름을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 폭포는 많겠지만, 특별히 크거나 유명하게 여겨지는 곳은 없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제주도 3대 폭포라면 다르다. 제주사람이 아니어도 한두 개 폭포 이름은 댈 수 있지 않을까? 정방폭포와 천지연 또는 천제연 이름들이 좀 헷갈리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떠오를 것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지 못했던 옛 시절엔 신혼부부 등 제주 여행에서는 폭포 방문이 기본 0순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얼마되진 않았지만 최근 십여 년 동안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폭포도 있다. 평소에는 존재감 없이 얌전하다가 큰 비가 한바탕 쏟아질 때에만 ‘나 여기 있소’ 하며 굉음과 함께 엄청난 물량을 쏟아낸다. 서귀포시 강정동의 엉또폭포가 그렇다.

잔잔할 땐 바다 밑에 숨었다가 폭풍우 몰아치고 파도 일렁이는 날에만 수면 위로 떠올라 본색을 드러내는 전설의 섬 이어도 같은 행태이다 보니 ‘육지 위 이어도’로 불릴 만하겠다.

‘엉또’라는 지명은 ‘작은 굴로 들어가는 입구’ 정도의 뜻을 가진 제주어다. 폭포가 위치한 곳이 마치 굴처럼 숨어 있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이제는 정방(正房)폭포, 천지연(天地淵)폭포, 천제연(天帝淵)폭포만 염두에 두고 제주 3대 폭포 운운 할 것이 아니라. 엉또폭포까지 포함하여 4대 폭포로 묶어야 하겠다.

제주 섬 둘레 한 바퀴를 연결하는 일주동로와 일주서로의 분기점인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올레 7-1코스를 출발하면 엉또폭포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중산간서로(中山間西路)인 1136번 도로를 건너고부터 월산마을 월산로가 이어지는데 10분도 안 되어 악근천을 만나고, 500m 전방에 폭포 절벽이 보인다. 멀쩡한 날에는 폭포가 아니다. 거대하지만 그저 단순한 절벽일 뿐이다. 폭우가 쏟아져야만 폭포 구실을 하면서 평상시에는 바싹 말라 있던 악근천에 폭포수가 콸콸 쏟아져 내린다.
 

 

한라산 남쪽 중산간에서 강정해안까지 10여㎞ 이어진 악근천은 하류 쪽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늘 말라 있는 건천(乾川)이다. 바로 인근 강정천에 늘 풍부한 물이 흐르는 것과 정반대다. 악근천은 엉또폭포를 기점으로 북쪽 5㎞ 상류와 남쪽 5㎞ 하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일대에 70㎜ 이상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상류 쪽 계곡으로 빗물이 급격히 모아지며 엉또절벽으로 쏟아져 내려와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예전에는 장관을 이루거나 말거나 신경 쓰는 이가 거의 없었는데 2011년 KBS2 TV 예능 프로인 ‘1박 2일’에 특이한 폭포로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인근 서귀포 주민들조차 비 오는 날이면 타 지역 여행 가듯 차 끌고 몰려오고, 비 때문에 그날 여행 공쳤다며 숙소 방에서 툴툴거리던 외지인 여행객들도 예정에 없던 이곳으로 몰려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인근 주민들에겐 평소 얌전했던 절벽이 갑자기 돌변하여 물 폭탄을 쏟아 내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고, 외지인 여행자들에겐 눈에 익은 다른 폭포의 모습들과는 대조적이고 독특한 경관이 신선해 보일 것이다. 폭포수의 높이가 5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정방폭포 높이의 두 배이니, 비 오는 날이면 제주 섬에서 최고 높이의 폭포가 되는 것이다.
 

 

3단 데크계단을 오르며 단계별로 폭포를 조망하고 나면 산책로가 이어지면서 주변 귤밭에 근사한 정자가 하나 놓여 있다. 엉또폭포에 왔으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전망 좋은 곳, 석가정이다. ‘해 질 녘(夕)이 아름다운(佳) 정자(亭)’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현판 한켠엔 도연명의 시 한 수가 걸려 있어 운치를 더해 준다.

‘사람들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다 보니 마차 시끄럽게 찾아오는 이 없어 좋구나. 그대여 민심이 어찌 이렇나 하면서도 마음 멀어지니 땅조차 절로 외져가네.’

현판 아래쪽에는 정자를 세워 준 이에 대한 이곳 엉또산장 주인장의 감사글도 눈길을 끈다.

“오가는 손님들 쉬어 가시라고 오경수 사장께서 지어 주시는데, (중략) 선제 수우(先帝殊遇)의 고마움을 여기 새긴다. 2011년 가을 이봉길.”

현판에 언급된 오경수 전 제주개발공사 사장의 집도 엉또폭포에서 멀지 않다. 오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엉또폭포는 저에겐 비가 오건 안 오건 언제든 와서 머리 식히는 곳이에요. 비가 안 와서 폭포수가 없어도 주변 경관 자체가 워낙 빼어난 곳이죠. 고근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폭포 주변을 거닐다 석가정에 올라와 있노라면 머릿속 복잡한 문제들이 다 풀리더군요. 석가정에선 가파도는 물론 멀리 마라도까지 보인답니다. 가까이 있는 엉또 무인카페는 올레길 걸으시는 분들에겐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죠. 지친 걸음을 잠시 쉬면서 음료도 마시고 지나간 사람들의 정겨운 기록들도 읽어 보고, 자신의 여행 흔적도 남길 수 있는 곳이랍니다. 석가정에서 무인카페까지 가는 길은 드물게 감귤 꽃과 열매를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운치가 참 좋습니다.”

비 오는 날 제주여행 중이라면 서귀포 엉또폭포로 달려가 볼 일이다. (끝)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