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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폴란드 바르샤바 이름의 비밀…왕이 사랑한 ‘바르스’와 ‘사와’

[유럽 인문학 기행-폴란드] 바르샤바의 기원

아주 오래전 먼 옛날의 일이었다. 폴란드의 수도가 크라쿠프일 때였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여행하기를 좋아하던 왕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카지미에르스 오드노비치엘’이라고 불렀다. 왕은 해마다 여러 달 동안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한 해 농사가 끝나는 겨울이 되면 비스와 강에서 배를 타고 북쪽으로 갔다가 배에서 내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말을 타고 돌아다닌 뒤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오곤 했다.

 

 

■여행을 좋아한 왕의 순행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해 겨울의 일이었다. 왕은 여느 해처럼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른 해와 달리 그는 여행 이틀째부터 가지고 간 건조식품에 싫증을 느끼게 됐다. 신선한 고기와 우유, 생선을 그리워하게 됐다. 요리사가 가져온 음식을 아예 손도 대지 않고 물린 그는 바람이나 쐴 겸 해서 배 밖으로 나왔다. 마침 강변의 작은 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집에 가면 평범한 폴란드 백성 가정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군.’

왕은 배를 강변에 세우라고 신하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다른 일행들에게는 배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시종 한 명만 데리고는 조심스럽게 작은 집으로 걸어갔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창을 통해 내부를 몰래 훔쳐보았다. 평범하게 생긴 작은 여인이 즐거운 표정으로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생선 여러 마리가 석쇠에 올려 졌고, 옆에는 작은 냄비에서 무엇인지 모를 국물 요리가 보글보글 끓었다. 여인의 곁에서는 갓난아기 두 명이 장난을 치며 바닥에서 뒹굴었다.

“똑똑똑.”

왕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요리를 하던 여인이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시기에 이렇게 이른 저녁에 저희 집 문을 두드리시나요?”

 

“길을 가던 나그네요. 배가 고프지만 식당을 찾지 못하고 있다오.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게 되었소.”

당시 폴란드 관습에 따르면 나그네가 문을 두들기면 어떤 사람인지를 불문하고 집에 들어오게 해 숙식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인은 낯선 나그네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주 귀하신 분 같은데 이렇게 누추한 집에 모시게 돼서 송구할 뿐입니다. 남편은 고기잡이하러 나갔답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그때 음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인은 왕에게 방금 데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대접하고 난로에 나무 서너 토막을 더 집어넣었다.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요리에 매달렸다.

 

 

왕은 만족한 표정으로 우유를 마시면서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누추하지만 곳곳에 포근한 가족의 정이 넘치는 게 느껴졌다. 따뜻한 우유의 온기가 온몸에 퍼지는데다 집의 분위기도 정말 아늑해 왕은 그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나 졸았을까? 왕은 덜컹,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났다. 문 앞에 덩치가 큰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아까 여인이 말했던 집의 바깥주인인 피오트르였다. 피오트르는 ‘어부’라는 뜻이었다. 그의 손에는 물고기 여러 마리가 든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여인은 남편에게서 바구니를 받아 부엌으로 돌아갔다.

 

피오트르가 돌아오고 약 30분 뒤 왕은 작은집의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왕이 가장 상석을 차지했고, 여인과 남편은 왕의 왼쪽에 앉았다. 오른쪽에는 두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왕의 얼굴만 빼꼼히 쳐다보았다.

 

여인은 왕의 접시에 따뜻한 빵 두 조각을 놓은 뒤 방금 부엌에서 요리한 따뜻한 냄비 국물을 떠서 사발에 담아주었다. 다른 작은 접시에는 석쇠에 막 구워 고소한 냄새가 나는 생선 한 마리를 얹었다. 왕이 배를 타고 다니며 그렇게 먹고 싶었던 평범한 폴란드 가정식 요리였다. 그는 부부의 시선은 생각하지 않은 채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왕과 부부가 식사를 하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여인은 식탁의 접시와 그릇을 모두 치우고 따뜻한 차를 왕에게 다시 대접했다. 왕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두 갓난아기를 보고 말했다.

 

“두 아이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요?”

“이제 태어난 지 겨우 1년 정도 됐습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어서 세례를 받게 해야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아직 세례도 받지 못했다는 말이오?”

“인근에는 성당이 없습니다. 성당까지 가려면 한 이틀 정도 걸어야 합니다. 저 갓난아기들을 데리고 그렇게 하기는 힘들지요. 그렇다고 신부님에게 이곳까지 오시게 하는 수고를 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왕은 가난한 어부 부부의 환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금화 몇 닢을 주고 갈까, 라는 생각도 했다. 두 사람의 성품으로 봐서는 돈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러던 차에 두 아기의 세례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나는 지금 곧바로 배를 타고 북쪽으로 갈 거요. 아마 두어 달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이곳 근처를 지나게 될 것 같소. 그때 다시 이 집을 들르면 지금처럼 따뜻한 음식을 맛보여줄 수 있겠소?”

 

“해마다 방문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렇게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 귀하신 분의 입에 맞는지 몰라 황송할 뿐입니다.”

 

왕은 문 앞에서 부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두 달 뒤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을 한 뒤 시종과 함께 배로 돌아갔다. 신하들은 멀리서 왕이 오는 모습을 보고 배에서 내렸다.

“전하, 식사는 어떠하셨는지요? 누추한 오두막집의 초라한 음식이 입에 맞으셨는지요?”

“왕이 된 이후 이렇게 맛있는 저녁은 처음 먹어 본 것 같소. 평생 잊지 못할 환상적인 식사였다오.”

 

왕과 일행은 다시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을 올려 다시 북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왕은 선미에 혼자 서서 방금 식사를 했던 작은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은집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희미한 등불은 꺼져 있었다. 부부와 두 아기는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왕은 빙긋 미소를 짓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저녁에 즐겼던 따뜻한 빵과 생선 수프의 온기를 가슴에 안고 오랜만에 편안한 숙면을 즐길 수 있었다.

 

 

■은혜를 갚은 왕의 선물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비스와 강 상류에서 배 한 척이 천천히 내려왔다. 뱃머리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북쪽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오드노비치엘 왕이었다. 그는 신하들에게 북쪽으로 올라갈 때 잠시 머물렀던 작은집으로 다시 가자고 명령했다.

 

왕은 배에서 내려 서둘러 작은집으로 달려갔다. 곁에는 여러 시종과 함께 사내 한 명이 더 있었다. 바로 신부였다. 왕은 작은집의 두 아기에게 세례식을 베풀어 주기 위해 인근 마을에서 신부를 물색해 배에 태웠던 것이었다.

 

왕이 집으로 오는 모습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부부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두 달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왕이 정말 반가웠던 것이었다.

 

“나리, 두 달 전 가실 때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하시더니 정말 오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를 이렇게 챙겨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에게 좋은 선물도 가져 왔소. 신부님이라오. 지금 바로 준비를 해서 두 아이에게 세례를 주도록 합시다.”

 

왕은 시종들과 신부에게 세례식을 거행할 성찬대를 서둘러 차리라고 했다. 시종들은 작은집 근처의 풍경 좋은 언덕에 조그마한 야외 성당을 만들었다. 신부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두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왕은 세례식을 마친 뒤 부부에게 신분을 밝혔다.

 

“나는 이 나라의 왕이오. 지금부터 두 아이의 대부가 될 것이오. 두 아이 중에서 남자 아이는 바르스(Wars), 여자 아이는 사와(Sawa)라고 부르리라. 두 아이의 아버지 피오트르에게는 피오트로 바르츠(왕의 어부)라는 이름을 주고, 피오트르의 가족에게는 작은집 근처에 있는 넓은 숲을 영지로 하사하노라.”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수십 년이 지났고, 다시 수백 년이 지났다. 피오트르 가족이 살던 작은집은 마을이 됐고, 다시 세월이 더 흐르자 큰 도시로 변했다. 도시의 이름은 두 아기의 이름을 따서 ‘바르체바(Warszewa)’가 됐고, 세월이 조금 더 지난 뒤에는 ‘바르샤바(Warsaw)’가 됐다.

 

오늘날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이름에는 백성을 사랑했던 가슴 따뜻한 왕과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 줄 알았던 부부, 그리고 왕과 부부가 동시에 사랑했던 두 갓난아기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