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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용의 탄생' 비밀이 눈을 뜬다

[K-탄생문화 '태실'·(上)] 성종태실은 왜 창경궁에 있나
길지(吉地)를 떠난 태실은 기운 왕조의 운명

'태장경'에 이르기를, '대체 하늘이 만물을 낳는데 사람으로서 귀하게 여기며, 사람이 날 때는 태(胎)로 인하여 성장하게 되는데, 하물며 그 현우와 성쇠가 모두 태에 매여 있으니 태란 것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종실록-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창경궁. 안내판을 따라 약간의 경삿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내 나무와 풀숲으로 둘러싸인 편편하고 작은 공간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마치 왕릉에서나 봄직한 위엄있어 보이는 석물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성종태실'이다.

 

이곳을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드문 듯했다. 잠시 발길을 멈춘 이들은 사진 몇 장을 찍곤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 태실은 생명을 뜻하는 '태(태반, 탯줄 등)'를 통해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꿰뚫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성종은 1457년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종은 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정희왕후 윤씨에 의해 차기 왕으로 지목됐으며, 당대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왕의 태실중 보존 가장 양호"
일제가 관리 명목 서삼릉으로
본래는 광주시 태전동에 위치

 

 

성종태실은 이러한 성종이 태어났을 때 그의 태를 묻어둔 곳이다. 그리고 우리가 창경궁에서 보는 석물은 그가 왕이 된 후 추가

로 조성된 것이다. 이를 '가봉태실'이라고 한다. 가봉비는 팔각난간석 면에서 90㎝ 앞에 세워져 있는데, 비석의 앞쪽에는 '성종대왕태실'이, 뒤쪽에는 태실의 가봉과 개수 시기가 언제였는지가 새겨져 있다.

김종헌 경기문화재단 선임은 "성종태실은 왕의 태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며 "가봉태실의 표준으로, 남아있는 의궤와 비교해서 보면 명칭과 규모, 장식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성종태실의 원래 위치는 창경궁이 아닌, 광주 태전동이다. 전문가들은 넓은 들판 가운데 볼록하게 솟아있는 봉우리(태봉)에 태실이 위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성종태실의 석물은 왜 창경궁으로 오게 됐을까?

이는 일제 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씨 왕가의 의전과 사무를 담당했던 기구인 '이왕직'은 1928년부터 6년여에 걸쳐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태실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서삼릉에 모았다.

이때 성종의 태실도 포함됐는데, 산 정상에 남아있던 가봉비와 석물은 태실의 형태를 연구할 목적으로 창경궁에 옮겨졌다.

 

 

근원적 가치 훼손 "관심 줄어"

 

태실이 풍수지리를 따져 길지에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생각해볼 때 근원적 가치를 훼손하고, 나라가 쇠하는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안타까운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김 선임은 "석물은 사찰의 탑처럼 그것이 자리한 곳에서 가지는 의미가 있다"며 "지금의 성종태실은 원래 있었던 자리를 잃다 보니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도 적고, 관심도 없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K-탄생문화 '태실'·(上)] 태실이란 무엇일까)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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