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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그리움을 그리다

하순희 시인, 네 번째 시조집 ‘청자 화병’
30년 전 본 청자서 영감 받아 작품으로
어머니·불교·고향 등 소재 78편 수록

긴밤 꿈속에서 전화를 드리려다

그 꿈속 닭 우는 소리 섭섭히 깨었지요

갈수록

뼈에 사무쳐

그리운, 그리움

 

-‘어머니’ 중

 

 

그리운 대상을 얼마나 그리워해 봤는가. 그리워 또 그리워하다 보면, 그리운 그 마음조차도 그리워진다.

 

하순희(사진)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 ‘청자 화병’을 펼쳤다. 78편 모두 단시조로 쓰여 책장은 쉽게 넘어갔고 가슴은 이내 먹먹해졌다. 이제는 흔한 단어가 돼버린 ‘그리움’. 하지만 이 감정은 시조 속 장과 장, 구와 구 사이에 끝없이 멤돌며 떠난 것에 무관심했던 나를 괴롭혔다.

 

20일 오전 ‘청자 화병’을 출판한 ‘도서출판 경남’ 사무실에서 하순희 작가를 만났다. 사전에 짧은 인터뷰를 부탁했지만, 소중한 대화는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청자 화병’은 하 시인이 불과 3년 만에 펴낸 신간이다. 이전 작 ‘종가의 불빛’이 15년 만에 출간된 것과 비교하면 간격은 꽤 짧아졌다.

 

이번 시조집은 그동안 써온 시조 중 단시조만 꾸려 담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연시조로 썼던 것을 단시조로 퇴고한 경우도 많다.

 

시조집의 제목이 된 시조 ‘청자 화병’도 이렇게 연시조에서 퇴고를 거쳐 완성됐다. 소재의 영감은 하순희 시인이 1991년 경남신문, 초정 김상옥 선생님을 만나던 자리에서 본 청자 화병에서 받았다. 그때 본 화병을 작품으로 쓰자고 했던 것이 시간이 흘러 2010년에 연시조로 탈고했다가, 오늘날 단시조로 퇴고해 30년 만에 나온 것이다.

 

 

 

한없이 품어주는 마당 넓은 옛집같이

저녁연기 필 때에 향 긷는 백합같이

그대를 감싸고도는

저문 날 노래같이

 

- ‘청자 화병’ 중

 

시조집 ‘청자 화병’은 하순희 시인의 삶이자 버팀목인 ‘어머니’와 ‘불교’, ‘고향’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하 시인은 이 중 ‘어머니’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내왔는데, 과거의 시조에서는 어머니가 한 구체적인 발언들을 담으며 그리움을 뚜렷하게 표현했다면, 신작 ‘청자 화병’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느끼게 되는 그리움들이 은은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쌓인 그리움 그 자체도 그리워하게 되는 감정을 담아냈다. 시조를 탐독할수록 하 시인에게 어머니는 어떠한 존재였는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산청 지리산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갑자기 어머니가 몸이 편찮아지셔서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2년을 돌봤어요. 조용조용하신 성격에도 해주신 말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고, 학업을 위해 어머니를 두고 부산으로 향할 때 손 흔들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애착이 많았어요.”

 

하 시인은 어머니와 2006년 이별했다. 그 후 10년간은 늘 어머니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후에야 조금씩 나아졌다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는 그렇게 세월을 지내고 있었다.

 

흰머리 휘날리는

거울 속 낯익은 얼굴

귀밑머리 파뿌리

그리움 짙게 배여

어느새

어머니 닮은

내 모습이 거기 있다

 

-‘문득, 그리움’ 중

 

이날 하 시인은 고뿔에 걸린 기자에게 “푹 쉬어라”고 당부했다. 아프지 말자고, 고생하지 말자고. 이에 대해 기자는 다소 생뚱하지만 인터뷰 중 하고 싶었던 말로 인사했다. “효도해야겠습니다.”

 

하순희 시인은 1989년 시조문학, 1991년 경남신문,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종가의 불빛’, ‘적멸을 꿈꾸며’, 동시조집 ‘잘한다 잘한다. 정말’ 등이 있으며 중앙시조신인상, 성파시조문학상, 반야불교문학상, 이호우이영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하순희 지음, 도서출판 경남, 120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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